빌립보서 4:6~7
응석을 부려도 들어주시는 하나님

  신앙체험은 자신의 신앙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신앙도 키워 주는 귀중한 체험입니다.
이렇게 오늘 신앙간증을 하게되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운아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과거에도 그러했습니다.
간증은 자칫 잘못하면 본인의 자랑이 되기 쉬우므로 조심해서 말씀을 드립니다만 혹 그렇게 들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성도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립니다.

서두에 내가 행운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이라고 믿고 감사드립니다.

저는 농촌에서 가난하게 사는 부모 슬하에서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집안이 어려움에도 부모님께서는 장남만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면서 온갖 고생을 마다 하시지 않으시고 뒷바라지를 해주셔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시면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런 어려운 가운데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웃 아주머니의 전도로 교회에 첫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게 벌써 50년전 일이 되었네요.
걸어서  한 시간은 족히 걸려서 갔던 산길 오솔길의 교회 가는길이 지금도 그립기만 합니다. 제가 한참 열심을 다해 교회를 다닐 때는 무섭고 두려운것 없이 주님을 의지하며 다녔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가 멀다보니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공동묘지 앞길을 주로 다녔는데 이 공동묘지는 많은 동네 사람들이 귀신을 보았다고 하는 그런 곳이였음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악한 것들이 나를 해하지 못하리라는 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말들을 하는 가운데도 그 길을 찬송을 부르며 담대한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일찌기 저희 집은 열열한 불교신자 집안이였고 할머니는 보살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불자의 길을 걷던 분이였습니다.
집안에 대소사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한달에 몇번이고 굿을 했었던 그런 집안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예수쟁이였던 저에게 예수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늘 눈총을 받고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105세에 별세하실 때까지 새벽마다 찬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시며 불공을 드리셨던 분이십니다. 그런 할머니가 제 신앙생활에 많은 힘을 주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왕 믿는거 예수라도 똑부러지게 믿으라는 말씀으로 절 위로해 주셨던겁니다.
저는 그런 할머니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군생활을 할때 할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임종 직전에 내 앞길이 캄캄하다 하시면서 저희 부모님께 빨리 목사님이나 신부님을 모시고 오라는 말씀을 하셔서 가까이 계셨던 신부님을 모시고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을때 정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진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서 대학을 갈 수 없는 입장이라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키가 작아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무작정 상경하여 1주일 정도 서울 구경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해군 입대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미국유학 가능!" 이란 글을 보고 해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신병교육을 마치고 하산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많은 직종가운데 그나마 유학을 가기쉬운 전자과를 기도로 지원하여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서 입교를 장담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 겁니다. 결국 전 그 과정을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할때 수석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미국 유학시험이 있다는 말을 지도 교관으로 부터 듣게 되어 시험을 준비하려 하는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만류하는 것입니다.  응시자가 워낙 많은 데다가 제 위에 선배들도 무척 많고 또 유학을 갈 수 있는 인원은 2명 뿐이기에 불가능 하다는 말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차피 안될텐데 다른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들을 했지만 전 살아계신 하나님이 저를 도와 주실것을 믿고
열심히 주님께 기도하며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시험이 두달남짓 남았을 어느날이였습니다.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제가 서점앞에 서있는데 책한권이 유난히 제 눈에 각인이 되어 들어오는게 아니겠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미국에서 발행하는 유명한 주간지 TIME이라는 시사주간지 였습니다.
꿈에서 깬 후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몇일 뒤에 똑같은 꿈을 꾸게 된겁니다.
참 이상하다 생각하며 그 이튿날 서점에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서점에 꿈에서 본듯한 TIME지가 있는게 아닙니까.
그래서 그 책을 구입하여 열심히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절친했던 친구에게도 그 책을 한번 보라는 권유를 했습니다.
드디어 시험날이 되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 들고는 너무 너무 놀라서 정신을 잃을뻔 했습니다. 시험 문제중 가장 점수의 비중이 큰 두문제가 제가 읽은 TIME지에서 시사문제로 출제가 된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으시고 꿈에서 조차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그 순간 어이할꼬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꽉찼고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감사한 마음과 아울러 정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모두 거의 백지로 낼 수 밖에 없었던 그 문제를 저와 제 친구만이 빽빽하게 답을 적을 수가 있었고 결국 합격자 발표날 가장 나이 어리고 계급이 낮았던 상병 두 사람이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해서 6개월간의 언어 교육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것입니다.
할렐루야!
유학생활도 간구할 때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마치게 되었고 귀국 후에 하사관학교 교관으로 발령을 받아 교관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에 사관 후보생으로 가려고 보니 대학졸업이상이 자격이 된다는것을 알고 야간대학을 미국 유학을 인정 받아 2학년으로 편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학사 학위를 받고 사관 후보생에 합격하여 해군 소위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더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셔서 성균관대 대학원 컴퓨터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univac 대행회사의 상무를 만나게 되어 그분의 권유로 그 외국회사에 입사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입사 시험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1등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고 서울과 대구를 걸쳐 이곳 일본으로 전근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족한 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석을 받아주셔서 오늘에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와 같아서 우리가 잘못을 하면 바른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때로는 매로 때리시기도 하지만
자녀된 우리가 필요를 따라 간구하는 것들은 언제나 들어주시길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면 언제나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기에 이런 좋으신 아버지를 영원토록 모시고 사는 우리 동경한인장로교회의 온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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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