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순종을 읽고 나서

2010.09.10 15:31

지은 조회 수:4600 추천:96

‘순종’을 읽고 나서
---- 제자대학 7기 박지은
  
제자대학 1학기 두번째 필독서를 받아 들고 앞의 필독서인 영적 전쟁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적 전쟁이라는 책은 제목부터 생소했고 내용 또한 소설책 보듯 쉬이 읽을 수 없었었다. 그에 비해 이번에 받은 책은 아주 익숙한 제목인데다 아마 설교말씀 중에 수도 없이 들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쉽게 읽고 쉬운 마음으로 독후감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건 심각한 내 착각이였다. 책을 읽으면서 순종에 대한 나의 잘못된 관점과 이해를 보았고 책을 덮을 즈음 나는 이전까지 갖지 못했던 가장 부담되는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영적 전쟁보다 훨씬 내 신앙양심과 태도에 강력한 변화를 요구하는 결코 쉽지 않은 대단히 부담되는 책이였다.
순종을 왜 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죄가 무엇인지 죄의 정체를 분명히 알 때 해결되었다. 누군가 죄를 지었다라고 하면 나는 살인이나 도둑질, 절도, 간음 따위가 먼저 생각났다. 그것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남편에게도 책과 같은 질문을 던져서 확인했다. 어찌되었던 죄의 출발은 살인이나 도둑질과 같은 사회적 범주의 불법은 아니었다. 죄의 출발은 아담과 하와의 죄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있는 완전한 세상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미혹을 받았고 결국 죄를 지어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결국 죄는 무엇일까? 죄는 불순종이였다. 불순종함으로 인류의 모든 죄가 시작된 것이다. 살인과 도둑질, 간음과 같은 것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불순종한 죄에서 나온 것이다. 순종하였더면 이 같은 죄 또한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인이 끔직한 죄가 아니라 불순종이 가장 무서우면서 끔직한 죄이다. 가인 또한 그랬다. 하나님이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이라 말씀하셨으나 그는 불순종하였고 결국 사탄에게 그의 마음을 내어 주게 되었다. 동생에 대한 시기와 분노,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마음이 생겼고 결국 살인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죄의 시작은 불순종이였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 모른다. 순종을 왜 해야 하는가? 바로 내가 죄 아래 놓이지 않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권위와 그의 보호아래 내가 안전하게 피하기 위해서이다. 얼마나 순종이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말씀이였다. 죄에 대해 민감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순종의 태도를 확인하면 되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였다.
더 두렵고 어렵게 하는 것은 순종의 대상이 비단 하나님 한 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위임하신 그 모든 권위에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3장에서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라고 했다. 선한 권위든 악한 권위든 모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이며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관점에서 볼 때 모두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히틀러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초대교회를 피박했던 헤롯 아그립바1세도 모두 하나님의 도구였으며 하나님 모르게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다. 악한 지도자들도 공경의 대상이며 복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데 나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안에서의 권위 조차 인정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남편의 계획이나 결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보다 지혜있다고 믿을 때가 많았고 심지어는 남편의 뜻에 반기를 들고 그의 결정이 바뀌도록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설득하려고 한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 내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세운 너의 머리가 너보다 부족하느냐, 네가 나보다 지혜롭다고 여기느냐?”
남편에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였고 그것은 죄의 시작이며 나와 우리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보호를 끊어내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였다. 나의 생각을 남편의 생각보다 낮추는 것이 지혜로움이였던 것이다. 오직 겸손과 순종과 기도만이 내가 권위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도구였다.
그리고 순종은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 뿐만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과 복종하는 태도를 요구하는데 이에 대한 말씀은 여러 믿음의 선진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악신의 부림을 받는 사울을 끝까지 공경하여 하나님이 세운 왕을 자신의 손으로 베지 않았던 다윗왕,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 진리를 담대해 선포하되 그를 비방하지 않았으며 공경하는 태도를 보인 바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느부갓네살의 명령이 우상숭배임으로 행위로는 불순종했으나 왕으로 인정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잃지 않은 복종의 자세. 그리고 에디오피아 여자와 결혼한 모세에게 지도자의 죄를 책망하며 권위에 도전했던 미리암과 아론이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았다는 사실은 순종과 불순종의 기준이 행동을 넘어서 마음으로부터 오는 공경과 겸손마저 요구한다는 것이다. 100%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도 힘이 드는데, 어찌 잘못된 권위자 앞에 공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베드로는 옥에 갇히는 순간에도 베드로교회 성도들에게 ‘왕을 공경하라(벧전2:17)’라고 권면하였다. 왕의 권위를 인정할 뿐 아니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은 그를 비방하지도 말아야 하며 경멸하면 하나님의 권위가 그의 권위 위에 있음을 모르는 불순종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교장을 비롯한 교감 그리고 부장교사들이 직장 상사로서 내 위의 권위였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장과 교감선생님에 대해 도전하고 맞서 싸우는 교사들을 대단하다고 본다. 그리고 학교의 모든 힘겨운 일들은 일 벌리기 좋아하는 교장과 교감의 탓이며 동료교사들이 모였다 하면 교장, 교감을 비방하고 더 나아가 교육청, 교육감, 교육부에까지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불만족한 교육환경과 교육성과를 위로받으려고 할 때가 많다. 그들의 권위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죄 가운데 형편없이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들에 대해 비방했던 일과 동료선생님들과 모여 교장, 교감을 조롱하며 같이 즐거워했던 일에 대해 회개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변호하지 말 것은 내 안의 겸손을 지키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개입하시도록 길을 열어드리는 것임을 깨닫게 하셨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직장 전체의 분위기를 나 한 사람이 바꾸려는 시도가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기 앞서 권위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과 이를 위해 성령님께서 나를 도우시도록 기도한다면 에스더 한 사람의 믿음이 유대사회 전체를 살렸듯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길 믿는다. 순종함으로 그 분의 보호하심과 날개 아래 내가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순종의 아름다움과 축복을 알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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