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순종을 읽고서...

2008.07.03 15:39

마쯔야마 토모미집사 조회 수:3164 추천:88

     순종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순전히 따름'이라고 쓰여져 있다.  단어로만 본다면 간단명료하나 마음과 행동으로 온전히 준행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막상 우리의 현실가운데 부딪히게 되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말씀을 보고,듣고,배운대로 순종 한다면 이것만큼 참된 신앙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종은 근본적이며 나의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초월한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도저히 할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기전의 나는 믿는 사람들의 순종하는 모습이란 자기 생각도 없는 바보인 것 같고,
현실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자세를 지닌 사람이 지혜로와 보였으며,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현실이 바뀌지 않겠냐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생각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심어 놓은 것일뿐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지혜는 아니였던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최고의 예배는 순종 이라는 구절을 읽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를 못드렸다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보호하심 아래 살아가는 열쇠인 '순종'을 내 손에 쥐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쥐고만 있으면서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친 꼴이 되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내 생각과 내 의지를 꼭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인 것처럼 그 열쇠를 사용하는 것을 뒤로한체로 말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하셨을까??  그래서 이 책을 읽으라고 하신것같다. 회개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금이라도 이렇게 깨닫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모두 순종해야 한다.  세상속에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권위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순종하고 복종 한다는 것은 그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그 권위 위에, 그 권위자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선한 권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순종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스리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셨고 인간 권위에 반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꼴이 되며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된다.  권위에 순종하지 말아야 할 유일한 예외는 하나님이 말씀에 명시하신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을 권위자가 우리에게 시키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우리는 겸손히 복종하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아버지 말씀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처럼 쉽게 변하고 거짓된 부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임을 잘 아는데도 인간은 왜 불순종의 길로 접어 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안의 죄와 악이 그 길을 막고 있고 내 뜻, 내 생각,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우리를 멸망 시키려고 항상 주시하고 있는 사단도 그 이유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불순종 하게 만든다.  우리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의 예를 잘 알고 있다. 하나님 말씀과 사단의 말을 구별하지 못하고 사단의 유혹에 빠져 그 결과가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 온전하게 순종하여 이런 사단의 유혹도 물리칠 줄 알아야 겠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어떤 값을 치루는지 성경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루시퍼가 그랬고, 아담과 하와가 그랬으며, 가인이 그러했다.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할때 명령의 99.9%의 수행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다. 100%에 가깝다고 해서 순종 이라고 생각 할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불순종 이라 하신다. 그리고 즉각으로 즉시 순종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예를 보고 우리는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려 아침 일찍 떠났다고 했다. 제단에 이삭을 묶어 올리고 칼로 이삭을 찌르려 할때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찌르는 시늉만 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이삭을 데리고 아침일찍 출발하여 사흘이 걸리는 길을 걸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했고 하나님은 마음과 행동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많은 복을 주셨다. 나는 목사님의 설교나 찬양이 은혜 스러울때 기도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때 정말 어떤 말씀이라도 순종 할 수 있을것 같으나, 정작 세상속에서 살다보면 내가 할수 있는것, 하기 쉬운것만 순종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이만하면 되겠지?'라거나, '설마 하나님께서 벌 주시겠어? 안하는 것 보단 조금이라도 하는것이 좋잖아.'라고 내 생각을 집어 넣고 합리화 시켰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은 엄연한 불순종 이며 거역이었던 것이다.  순종하기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시키시는 예는 없을 것이데도 말이다. 내가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듯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실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살펴보면 너무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죽일수만 있다면 아무라도 괜찮다는 어처구님 없는 이유로 지나가는 사람을 살해하거나, 더욱더 과격해지는 いじめ, 늘어만 가는 마약중독자...  이런 사회적 현상들이 대부분 가정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생기는 일들이다. 가정의 권위는 가장 기초적이며 가장 중요하다.  자녀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며, 결혼한 자녀들고 예외가 없다.
그리고 결혼은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신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연합할때 새로운 권위질서가 형성되는데 남자가 권위의 머리에 앉아 질서를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세상을 보면 갈수록 남편, 아버지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으며, 남편을 아버지를 돈버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세태를 보면 많이 안타깝다.
     나는 믿지 않는 남편이 있어서 항상 남편 구원이 기도 제목이다.  요즈음 들어서 남편에게 하는 나의 언행은 신경질 적이고 화를 잘 내며 남편의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남편이 교회를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합리화 시킨 것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못하는 샘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열심히 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으며.  남편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께 100% 의지하지 못하고 맡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십자가를 진다는 명목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기는 커녕, 남편을 학대하고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니, 점점 남편은 교회와의 담을 쌓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많이 힘들었고 계속 이 부분을 기도하고 있었던 참이다. 어쩜 이렇게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책을 읽게 하심으로 어리석은 나를 깨우치게 하시는지...
영적 전쟁을 읽을 때도 너무 적절한 시기였는데 말이다.  역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수없으며 어떠한 평안도 기쁨도 축복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  

     사회의 권위 즉, 직장, 학교, 단체의 권위에도 순종하고 복종하며 열심히 일하여, 직장과 학교의 규정과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다.  
     워치만 니는 말하고 있다.
-순종하는 자들은 순종만 하면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못된 순종의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 반대로 그분은 잘못된 행동의 책임을 위임된 권위에게 물으실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은 반역이다. 권위 아래 있는 자들은 그 점에서 하나님에게 책임을 져야한다.- 라고.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우리는 심판을 놓고 왈가 왈부 할 권리도 의무도 없다.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 자신 이지마, 물 주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처럼.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17:10) 의 말씀을 믿음의 성장과정과 관련하여 쉽게 풀어보면,
믿음은 권위에 대한 순종을 할때,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할때, 참된 겸손의 태도로 행할때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행하여햐 하며, 99.9%의 행함이 아닌, 즉각적인 100%의 행함, 그리고 끝까지 행하여햐 하며, 자신을 낮추어 낮은 마음을 지켜서 순종의 상을 받을 자리를 지켜야 한다.  자신의 순종을 교만하면 루시퍼같은 결과를 초래하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여 지면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해진다.

이 책에는 사도바울에 관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  언젠가 열린모임을 인도할때 바울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교회사를 통틀어 위대한 사도로 칭송 받고 있는 인물이다.  나는 한마디로 素晴らしくて、凄い人라고 표현했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철저하게 복종한 사람이었고 철저하게 겸손한 사람이었다.  사도바울은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날 당시부터 자기가 사도로 부름 받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바울은 오랜세월동안 자신이 사도가 되기까지 철저히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며 자신을 높이지 않고 그 권위를 신실하게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기존 리더쉽,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사도로 부르셨다.  사도바울은 혼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자신을 사도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인 담임목사님을 통하여 주님의 제자로 부르신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한국의 실정을 보며 걱정하고 한탄하며 비판한다. 자기손으로 뽑아논 지도자를 1년도 채 되지않아 퇴임하라고 물러가라고 시위를 한다. 이런 방법이 정말 옳은 일일까?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일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권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공경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중보하며 비방하지말며 그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나 정작 우리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지도자를 위해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인정하지 않고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어서 저주 받은 땅이 되어버린 북한을 위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 너무나 많은 어두운 세력이 많은 이 일본땅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 열방을 위해서 우리는 입만 뻥끗 거리는 기도가 아닌, 내 마음에서 나온 기도를 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원하신다.  우리가 겸손과 순종과 기도로 나라,민족,지도자,악인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나님 백성이 자신을 낮추고 기도하며 악한 길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도우시고 그 땅을 고쳐주실 것으로 믿는다.

     나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권위에 눌려 당한 듯한 기분이 들때가 있었다.  그때는 나도 모르게 변명하며 권위자에 대해 거칠게 말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분 자체가 순종하지 못하게 하며 권위자에 대한 태도조차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정말 진정한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지만 겸손이 필요조건으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권위를 인정하고 내가 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변호하시게 전적으로 맡기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순종이란 책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겪을 수 있는 미묘한 갈등을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다.  존 비비어가 순종하기 힘든 현실에 놓여 있을 때에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마다 주님과의 대화가운데서 그 답을 찾으며 순종 할 수 있는 마음을 주님으로터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주님과의 깊은 교재를 더욱더 즐겨야 온전히 순종할 수 있고, 주님과의 사귐을 가지며 순종의 지름길로 가야겠다.  온전히 순종하며 하나님의 권위아래 누리는 보호와 자유를 나도 풍성히 누리길 소원하며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많은 깨달음과 회개의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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