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벼랑 끝에 서는 용기를 읽고...

2009.03.13 20:04

김애영집사 조회 수:3563 추천:88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 상황은 주님의 참 빛이 나를
주장하지 못한때를 기억나게 한다.  지금은 빛이 내안에 드려졌고 더 나아가 구석 구석을 밝히 비춰 드러나지기를 원한다. 내 마음의 갈급한 소원을 대신해 주는 시구를 인용해 보자.  아직도 주께 열어 드리려 하지 않는 제 마음의 닫혀 있고 죽은 공간들을 보소서.  부드럽고도 강한 주의 사랑을 보내소서.  제 속 깊은 곳에 덮게 처럼 들러붙은 저항의 껍질들을 이제 벗겨 주서소.  새로운 경이에 정복당하지 않으려는 제 삶의 그곳들을 하나씩 열어 주소서.  참된 성장의 접근을 막으려는 제 마음의 그곳들을 하나씩 열어 주소서.  진리보다 제 안전을 더 챙기려는 제 심령의 그곳들을 하나씩 열어 주소서. 다른것, 낯선것에 저를 열어 주소서. 평범한 것도 색다른 것도 수용하게 하소서.  부활의 하나님, 산자들의 하나님 제안의 무덤 문 열어 삶으로 가득 채우소서.  

     그렇다.  내 영은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을 이루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하지만 앞에 인용한 내용처럼 많은 불순물이 장애가 됨을 발견할수 있었고, 또 부를 지배하는 굉장한 힘인 `두로의 왕`과의 전투를 인식하고 있지도 못했기에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도 못했다.  재정적 어려움은 당연한 일상으로 면역되어 버려진 것 같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믿음으로 산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내 작은 입만을 채우느라 급급했던 나의 작고 어리석은 마음을 떠올리면 하나님앞에 사람앞에 너무나 부끄럽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진실을 외면할때면 성령께서는 "더 할수도 있었잖아. 아버지께서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고 공급하실거야." 라는 가르침에도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이끄시고 나를 사랑하심으로 계속적으로 자녀의 관계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앞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고백하신 말씀, 지금의 교회로 이전하기전 그저 내 필요만 채우고 자녀 가르치고 대충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작은 승광교회의 삶보다 내가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하실줄 믿습니다. 란 고백으로 이 땅가운데 나를 보내신 뜻은 작은 것에 만족하며 나 자신의 필요에 만족하라는 뜻이 아니실거라며 온전한 신뢰로 벼랑끝에 서셨을때 6년이란 세월을 이끌어주신 산 역사가 본이 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로렌 커닝햄의 메세지에 앞서 성령께서는 무수히 잘못된 것을 지적해 가르쳐 주셨는데도 나는 이제서야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얼마전 전도사님이 시윤이의 일을 이야기해 주셨을때 모두들 한바탕 웃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시윤이가 교회 슬리퍼를 거꾸로 신고 있었을때 전도사님께서 "시윤아, 신발 거꾸로 신었어" 라고 이야기 하시자 시윤이는 무언가 깨달은듯 신을 벗더니 바르게 놓고 다시 신을때 발을 지그제그로 하고 신으므로 다시 거꾸로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내심 찔림을 받았었다.  그렇다.  성령께서는 잘못된 것을 가르쳐 주시지만, 나의 고집과 집착이 연속적인 실수의 반복됨을 낳는다.  그리고 내가 했던 작은 섬김,베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엘리야`가 배가 고팠을때 가난한 여인이 식사를 대접했다.  자신의 먹을 몫도 남기지 않고 베풀었다.  만약 배가 고픈 필요를 채워주지 않고 신발을 주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여인은 자기 스스로 베풀었다는 자족감에 있었을뿐 진정한 베품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얼마나 이런 실수를 많이 했던가?  그리고 베푼다고 하면서 정성으로 그 사람의 기분은 생각지도 않고 접선하듯 내던진 나의 가증한 섬김이 얼마나 그 사람을 더 비참하고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베풀지는 않았는지...하는 생각을 해본다.  섬김은 내 자신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서야 함을 확실히 깨달았다.  제자대학 3학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앞서 행하셔서 느끼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확정적으로 내것이 되게 하시는 가르침의 이끌림을 경험하고 있다.  3학기에 들어서는 이론적인 학습보다 실전적인 경험을 통해 환경과 어려움 시험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방법을 생각나게 하시며 감동을 주시며 승리케 하심의 은혜가 있다.  그 은혜에 따라 어떤 문제든 결론은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함에는 변함이 없다.  앞에 순종이란 책에서와 같이 불안 염려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적임을 알고 있다.  온전히 맡겨야 한다.  먼저 계산해보고 할만해서 순종하고 행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능치못할일이 없으심을 믿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고 보면 돈은 나의 믿음과 주님나라 확장의 열쇠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내 자아가 듣고 행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경제학을 도입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선교 후원과 예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보이지 않게 돕는 아름다운 손길을 펴므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데 효과적으로 협력할수 있도록 서로 배울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와 너를 통해 협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모습을 얼마나 기뻐하시며 그런 모습이 될수 있도록 이끄시는지 알수 있었다.  `우리`라는 단어가 그렇게 놀라운 힘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대수롭게 생각했던것도 같다.  `우리`라는 시작이 천지창조와 인류구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 우리는 천지창조 이전에 성부,성자,성령께서 의논하시고 뜻을 모으셨던것을 발견할때 의로운 '우리'라는 이름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을 창출할수 있는가?  반대로 '바벨탑'을 만들때 '우리'라는 시작의 결과는 악함에서 비롯된 협력이었기에 무서운 징벌로 이어졌음을 바라볼때, 방향이 얼마나 중요하며 힘의 방향이 옳고 그름에 따른 결과가 얼마나 크게 상반되는지 바라볼수있다.  우리 동경한인장로교회는 또 한번의 주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벼랑끝으로 힘겹게 발을 옮기고 계신 목사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과연 우리라는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도형하며 가식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인가?  당당하게 손을 잡고 목사님의 비전과 함께 하며 벼랑끝에 서있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면 자원함으로 함께 서 있을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면서 하나님을 배울수 있도록 상황을 마련하실것을 믿고, 나의 순종으로 시작되 우리로 모여 주님의 역사가 성취됨을 소망하며 나아가야 한다.  서로서로 필요를 알리고 후원자를 찾으므로 영적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속에 합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겠다.  진정한 우리로 나아가자.  또한 큰 그릇을 준비함으로 커다란 꿈을 꾸어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커다란 꿈을 주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을 위해 행할 더 커다란 도전과 모험을 주려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두려움없이 전진해야 한다.  만약 사단이 탐욕으로 공격하면, 누구에게 무엇을 줄지 하나님께 물으며, 사단이 두려움을 사용한다면 믿음과 사랑으로 굳게 서야 한다.  거절하라고 공격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라 한다. 지금껏 내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베풀만한 돈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사단과 맞서 싸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구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입장에 서게 함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줄수 있기를 원하시는 뜻도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기도 드린다.  목사님께 바울에게 보내어 물질로 헌신할 수 있었던 루디아를 세명만 붙여주세요 라고... 그러지 않으시려거든 내가 루디아가 될수 있도록 재정을 열어주세요. 라고...  
물질이 없어 선교하지 못하고 주님의 몸된 성전이 없어지는 일은 행하시지 않기를 원합니다. 라고...  그것은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계심을 믿기때문이다.  여호와의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되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역대상 29 : 11- 12 ) 하신 말씀을 의지한다.  하나님을 위해 당당히 나아갈수 있기를...  그러므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당돌함을 본받고 나의 물질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며, 교회를 위해, 예수님을 위해,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 내 삶가운데 허락하신 물질을 통해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의 주역이 내가 될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라고 한발 한발 믿음으로 내 딛어 벼랑끝에서만 볼수 있는 주님의 솜씨인 넓고 아름다운 절경을 내 눈안에 담아보고 싶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펼쳐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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