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제자대학 간증문.

2010.03.15 23:44

윤현정 조회 수:3166 추천:63

  6살때 유치원을 선교원으로 다녔던 나는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되었다
그때 마침 옆집 친한친구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고, 또, 맛있는것을 준다는 단순한 말에 넘어가 교회를 다니게되었다. 사실 그때의기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날의 아기예수님이 내가아는 교회의 전부였다.
그리고 얼마안되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게되었고 거기서 또 바로 윗집언니를 통해 교회를 나가게되었다.
어려서인지 교회에대한 부담감은 전혀없었고, 많은 친구들이 있다는것이 좋기만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때부터 누구나 한번씩 겪는 중학교시절의 사춘기와, 고등학교 초기의 방황을 나는 교회와 함께했다. 모태신앙은 아니였지만, 어렸을때부터 믿은지라, 주님의대한 불신이나 교회에 불순종같은건 없었다. 하지만 그와동시에 뜨거운 믿음과 열정또한 없었다. 교회를가면 친구들과 언니오빠들을 만날수있어서  좋았고, 즐겁게 부르는 찬양이 좋았고, 나를 반겨주는 교회라는 곳이 있어서 좋았던것이다.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초등학교3학년이 되었을때는 엄마도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때는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오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의지와 믿음이 그열정이 대단했던거같다.
  그렇게 교회를 집처럼 여기면서 다니다가, 점점 세상의 아는것이 많아지고 생각과 판단을 할수있는 나이가 되자 나에게도 가정으로 큰 시련이 다가왔다. 그것이 내가 한창 방황하고 있었던 고1여름이였다. 학교가 싫었던 나는 엄마에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뒤 몇일지나지 않은 날이였다. 짐작하고있었지만 직접 엄마입을 통해 우리 가족사를 들으니 충격이였다. 그때 나는 표면으로 내색하지않았지만, 가슴속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 태어났으면 안됐을아이 라는 것이 가슴속에 박혔다. 내가 태어나고 두 살도 되기전에 부모님이 항상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사정이 생겨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겨, 할머니의 손주 손녀의 눈치를 보며 유년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 먼곳으로 가셨을때는 두세달에 한번씩 만날수있었다. 어렸지만, 우리집이 다른 집 가정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서 받는 사랑보다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것이 좋았고 그게 더 나에게 크다고 생각했다. 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엄마로부터 얘기를 듣자마자 마음에 구멍이 투웅하고, 뚫려버린 듯 했던 것은, 친구의 사랑과 관심만으론 내마음이 다 채워져 있지 않았던것이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도망치듯 부산을 나와 천안으로 이사를 가게되었다.
아무도 우리를 알지 못하는 곳이었고, 엄마와 나도 매우 낯선곳이었다.
이사를 가자마자 새로섬길 교회를 찾았다. 사실 그때 내마음은 어느곳에서도 정착하기 싫었고, 모든 것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의 믿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있었고, 더 이상 나로 인해서 힘들고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때 이제 막 부흥의 불길이 올라가는 교회가 있었다. 80명도 채안됬지만 모두들 은혜충만한 얼굴로, 감사하며 예배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모습에 엄마와 나는 그 교회를 등록하게 되었다. 청년부는 커녕 중고등부도 없었던 그곳에서 교육부서를 세우고 부흥이일어나 1년도 안되 200명이 등록을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 교회를 가고 얼마 안 되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게 되었었다. 그때 한해의 말씀카드를 뽑는 순서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내가 뽑은 말씀을 붙잡고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로 인해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말씀은 시편 2장 7절8절말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라는 말씀이었다. 거기다 그날의 특송이 너는 내아들이라 라는 찬양곡이였다. 부르는 내내 너는 내아들이라는 그 말씀하나하나에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는 말씀에 내속에 엉켜있던 모든 뿌리들이 다 타서 녹아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직접 내 귀에 대시고, 현정아, 너는 내 딸이란다.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단다. 내가 너를 낳았단다. 라고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그날이후로 나는 내 모든 것이 변했다. 심하게 나를 옭아매고 있던 우울증과 자기비하는 깨끗이 없어지고, 음악을 배울수있게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학교를 나가게되었고, 자신감없던 나에게 하나님이 항상함께라면 무섭지않아라는 담대함과, 또 마음한켠에서 썩고있었던 가정에대한모든것들, 겉으로는 보이지않지만 나에게있어 가장 위협적이고 두려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셨다. 그이후로도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한다는 음성, 너와 항상 함께하겠다는 메시지를 들려주셨다. 내가 하나님을 통해 바뀜으로  엄마의 어두운 짐들도 하나둘씩 가벼워졌고 그 어떤가정보다도 행복한 가정이 될수있었다.
  그리고 벌써 6년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정말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았고 불행할줄만 알았던 삶이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고나서부터 모든 것이 변했고 또 행복하다고, 나를 통해서 엄마를 통해서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한다고..  물론 지금도 시험에들고, 믿음으로 영적으로 나약해질때도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나에게 또다른 깨닳음을 알게하시고 감사하게 하신다.
일본오기전의 기도제목들중 90%이상의 기도들이 응답받았다. 일본에 와서도 하나님은 나의 곁에계셨고, 내 기도를 들어주셨고, 작은 것 하나까지도 주님께서 놓치지 않으셨다.
요즘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받은 사랑을 너와같이 아프고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라고 마음속에 남겨 주시는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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