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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세계 비젼을 읽고...

2009.03.26 01:41

마쯔야마 토모미집사 조회 수:4302 추천:88

  이 책을 읽으며 양육반을 시작할때 제자대학의 학기마다 보았던 나무심는 아이작 뷔페의 철저한 자기 관리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인 도슨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이었다.  도슨은 어려서부터 강한자가 아니었다. 성격이 아주 좋은 자도 언변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으며, 모든 영적 은사를 다 소유한 자도 아니었으며, 물론 완전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법을 어겨 경찰에 붙잡힌 일이 많았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을까?  그런그가 스무 살에 인격적인 하나님을 영접한 후 인생이 달라졌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질그릇과 같은 그의 육체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육체적으로 약했기에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고린도후서 4:7 의 말씀처럼 그는 자신을 평범한 질그릇이요 부서지기 쉬운 그릇으로 여겼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그 약속을 믿고, 날마다 기도 하기에 힘썼다.  말씀 묵상은 도슨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양식이었다.  도슨은 말씀을 전파할 때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했는지, 듣는 사람이 말씀속에 나오는 인물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전했다.  도슨은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나라이름 하나, 하나를 불러 가며, 그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매일 아침 2시간씩 기도하며, 세계를 향한 비젼을 품고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헛되이 하지 않으셨다.  또 도슨은 우리의 삶을 수레바퀴에 비유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말씀과 기도, 이웃에 대한 순종과 증거로 네 바퀴살과 이 모든것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축으로 말했다.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도슨은 여러곳을 다니며 강의를 했고, 어떤 성도가 만들어준 수레바퀴 모형은 그의 수레바퀴 삶의 강의를 더 쉽게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레바퀴의 삶을 사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수레바퀴의 삶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사역의 자리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자리를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한 도슨도 처음부터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나타내지 못했던 사람이었음이 나에겐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순종함을 통하여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됨을 알게되었다.  하루에 한 명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 작정한 그의 삶은 주일 점심시간에 피켓을 들고 전도를 하는 나에게  도전을 주었다. 양육받고 훈련받기 전에는  아무리 목사님께서 전도를 하라고 말씀하시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라 말씀하셨지만 전도의 어떤 방법을 막론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내가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양육받고 훈련받으면서 주님께서 못다 이루신 일을 내가 한다는 것이 감격이었고 영광스러웠다. 그리고 감사했다.  조금씩 영혼들에 대한 차가웠던 나의 마음을 성령님께서 녹여주셨던 것이다.  영혼에 대한 헌신의 동기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러한 사랑을 품기란 쉽지가 않다.  처음엔 긍휼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반복되는 거절을 통해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감사한것이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반복은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이젠 솔직히 거절당해도 창피하지 않다. 그래도 감사합니다.라며 웃는다. 정말 성령님께서는 나를 많이 변하게 하셨다.  나는 소망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부터 온유함과 긍휼과 열정이 나와 철저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내가 참 많이 부끄러웠던 부분이 있다.  도슨은 잠은 자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어도 충분한 기도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육체의 지침과 어려움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잠 자는 것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부끄러웠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는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는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았는지.  하기 싫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피곤하다는 이유를 핑계삼아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변명하지 마십시오.'라는 이 말은 나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내가 항상 주님께 말했던 말들...
주님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이래서... 저래서... 못하겠어요. 주님께서 나의 형편을 더 잘아시잖아요... 라고...
이런 고백을 하는 나에게 한 맹인의 이야기는 나에게 부끄러움을 주었으며, 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역시 나는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철저하게...

  형의 집을 털러가려던 쥬안이란 사람을 동행하는 차속에서 주님을 영접게 한 후 그의 삶을 양육하지 못한것을 비극이라고 도슨은 표현했다.  많은 결신자들을 얻기 원하고 그들의 이름과 주소, 숫자에만 관심을 쏟곧 하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비극이 아닌가... 단지 숫자만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그 소중한 영혼들을 교회안에 툴툴 털어버리고 가뿐하게 돌아서는 모습. 그것이 비극인 것이다.   영접은 시작에 불과하기에 양육과 돌봄이 필요하고 이러한 양육과 돌봄은 어떠한 교재보다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 그리스도 인에게 육적인 양육이 아니라 영적인 양육의 필요성과 무엇보다 양육자가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 자신이 양육을 받고 셀리더로서 서게 되니 양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을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양육이란 포기,헌신,사랑의 모습을 전적으로 모두 감당하고 꾸준히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고 내 뜻이 아닌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며 기도로 나 자신을 다스리며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닐까.  나의 영적 교만함으로 나의 불순종으로 그 소중한 한 영혼을 잃게 되어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내가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29년동안 개인 전도를 계속 했던 도슨도 항상 주님을 증거하고 전도할때면 두렵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며 그저 믿고 따르고 의지할 분은 성령님 밖에 없지 않을까.
  
  요즈음 특히 내 심령을 파고 드는 "나를 본받으라" 는 사도바울의 말.  도슨 또한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치고 그리고 가르친 대로 살았듯이 도슨 또한 도슨이 가르친 것은 자신도 그대로 살기 위해 그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난 정말 부족하다.  지금도 셀리더를 하고 있지만, 매일 매일 나의 삶을 살아가며 지켜보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을까.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는 대로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바보같은 가르침이 되겠는가...
평범하고 평탄한 삶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내 능력에 맞는 일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감당할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겠다.
눈이 먼 장님도 그 심령을 움직이시어 전도하시게 한 주님,  부디 나의 강팍한 심령을 친히 안수하셔서 주님의 마지막 사명인영혼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나의 전신이 나의 영혼이 느낄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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