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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종교개혁을 읽고...

2008.07.25 22:42

김애영집사 조회 수:3503 추천:73

책을 읽어가는 내내 풍성한 상차림을 거저 대접 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이들의 수고의 손길을 느끼며... 오랜 시간 인내로 인해 건져 올린 물고기 반찬, 또 옷이 찢기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끈질기게 사냥해온 고기반찬, 땀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대가로 얻은 채소, 과일, 곡식 등 나의 몸이 건강한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 풍성하게 준비된 과분한 식탁을 선사 받은 듯하다. 송구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정말 미안한 모습은 다 먹지 못하고 상을 물리는 것임을 알기에, 골고루 다 섭취해서 건강한 몸으로 되기를 바라는 상 차린 분의 마음을 알기에 열심히 맛있게 감사히 먹었다. 그것은 마른 뼈에 생명을 불어 넣는 에너지원이다.
성령은 수많은 개개인이라는 사람 속에 한분으로 거하시며 한 가지 목적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양육 훈련 중 갈망했던 나의 모습은 마른 뼈에 삶에서 뼈가 맞춰지고 근육과 힘줄이 붙고 생명이 들어가 살아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원했었는데 그리스도 중심이고 싶은 인간의 잠재적 소원을 아시고 이끌어 주셨다. 그 다음은 군대의 군사로 사용되어져야 함을 가르쳐 주셨다. 에스겔이 본 큰 환상은 21세기에 일어날 현상....에스겔이 본 환상의 주제인 뼈는 내 자신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나의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낙망할 것만은 아닌 것이 개인의 문제보다는 체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신약성경의 원형과 너무 동떨어져버린 체제, 멜로디만 있고 하모니가 없는 체제, 목적을 상실한 교회체제, 큰 날개만 있고 작은 날개는 없는 불균형한 상태 때문에 어떤 계기로 성령의 불이 붙더라도 지속적으로 타오를 수 없는 체제가운데 많은 인력이 낭비되어 무기력한 상태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교회를 파멸시킬 수는 없어도 무기력하게 만들 수는 있는 사단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말이다. 생명을 질식시키고 마는 것이 바로 제도와 관행의 부패이며 그것이 실체이다. 그렇지만 하나님 그 높으신 우리 왕께서 태초 전부터 세우고 이루실 뜻, 그 비전은 아무도 바꿀 수 없으므로 우리는 안전하다.
건강한 생명력을 가진 하나님의 기관인 교회를 여는 키는 바로 내 자신이다. 그리고 영적혁명, 순수한 교리로의 개혁, 그리스도인의 삶으로의 회복인 성령의 부흥은 필수조건이 된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틴루터로 부터 그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위해 준비하시며 연속적으로 사람을 통해 이끄신 하나님께서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주관자이시다. 그 분의 21세기의 뜻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직을 감당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며, 지금까지 뒷짐 지고 소비자 입장에서 있던 나를 생산자로 개조하시는 작업을 계곡아래에서 진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교회 안에 20%밖에 안 되는 일꾼으로 교회의 일이 진행되었으며 그나마 소비자 입장에 놓여있는 성도들의 비유를 맞추고 뒤치다꺼리 하는데 모든 에너지가 소요되어 목회자들은 지칠 대로 지쳐 목적까지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마치 접시돌리기를 하는 서커스단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것에 비유한 것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모른다. 소비자 입장에 선 성도를 에디라 불러보자. 이제 그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고통과 수고를 혼자 감당한 분들의 짐을 덜기위해 에디 들을 사용하심으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맡기시겠다. 작정하신 것이다. 그렇다 바로 에디인 내 자신이 문제였다. 그 능률적인 활용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닦아 놓으시고 가르쳐주신 1세기 교회의 원형을 기초로 주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 그리스도의 몸이 살아있는 교회가 회복되기를 얼마나 바라시고 이끄시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님의 방법은 그냥 그렇게 적당히 방어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옥문을 공격하는 전략을 갖고 계시며 군중을 향한 관심보다 제자들과의 시간이 더 중요하고 가르치시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신 주님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고하시기를 삼천 명 오천 명의 무리들로 인한 기쁨과 희망과 비전이 아닌 하늘로 부활하신 다음 나의 제자들이 주님의 권위를 위임받고 잘 감당할 것의 희망과 비전 때문에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며 기뻐하셨다는 사실에 너무 무지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안일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과 제자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이들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목사님께서 우리 제자대학을 공부하는 1기생들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말씀이 얼마나 심중에 있는 말씀인지 짐작케 되었다. 그리고 생명 걸고 나와 함께 할 자를 찾으신다는 그 말씀은 간절한 소망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그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안다고 하면서도 내심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던 거지? 라고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아니 어쩜 아직 모를 수도 .... 새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하는데 담기도 전에 어느 틈사이로 다 새어나가 버려지는 관경이다. 완전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을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는 셀 교회, 곧 초대교회의 모습의 원형을 그대로 실행하기 위해 출발하는 시작점에서 12명의 제자를 세우고 제자들의 직계가족으로부터 70명의 후원조직을 세워 실행하고 120명의 기본회중이 있어야 삼천 명 오천 명의 놀라운 폭발번식을 기대할 수 있는데 70명의 후원조직 이전에 제자들이 곧 셀 리더들이 세워져야할 이 중요한 시점에서 목사님께서는 같이 생명 걸고 주님의 교회를 세울 제자들을 달라고 호소하며 얼마나 기도하고 계실까! 생각하게 된다. 나의 안일함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도망치려고 했고 모으려고 하셨지만 원치 않았던 나의 모습을 회개하였다.  
진정 마르다같이 교회를 위한다는 합리화속에 주님이 원하시는 일 그리스도의 임재와 주님과의 교재보다는 마르다 자신이 주권자가 되어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는 부차적인 일을 강행할 때 오는 그리스도를 위한다고 하는 일의 성취감은 그리스도를 섬길 때의 자유와 은혜와 기쁨을 빼앗아 갈 것이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드리는 동안 열심히 남을 섬기기 위해 음식준비하며 일하지 않은 마리아에게 불평하는 마르다를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을 바라고 순종했던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그 사건으로 비춰볼 때 지금도 대변인이신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귀 기울이며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 일을 접어두고 제자로 훈련받아야할 책임 앞에 얼마나 충실히 따르며 나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하셨다.
한 단계 한 단계를 충실히 거치지 못하면 감당해 내지 못할 셀리더, 철저한 종이 되어야하는 셀리더로 설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루터와 웨슬리에서 나로 이어질 계획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므로 셀교회의 폭발이 아닌 불발탄을 만들어 낼 뿐임을... 그 열쇠는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는 지도력 능력을 소유해야만 한다. 오직 순종과 종의 마음만이 핵심집단을 일으키는 지도자의 자질을 공급해 줄 수 있다. 셀리더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를 위임받았다. 그에 따라야할 행위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인정하며 그분과 거하는 것 공동체, 사역, 은사, 종의 도. 협력, 기도, 덕을 세워주기, 그리고 전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공동체를 인도할 때는 어떠한 타당한 이유와 주님을 위한 일이라 할 찌라도 나의 비전을 이루려 해서는 안 되며 영적으로 성장시키려 하는 등 눈에 보이는 것을 이루려는 성급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존심이 원인이 되며 신속한 결정과 즉각적인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어 있음을 지적해 준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 하지 말며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을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른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성령의 역사를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사실이다. 곧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일하게 하시려면 우리 안에 패러다임부터 전환해야한다. 우리 안에 고정된 틀, 즉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려는 것들을 얼마든지 흡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홀로그램이 내안에 도입되어져 신약성경을 토대로 한 하나님의 성육신적 패러다임(임재, 능력, 목적)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있다는 것, 기존의 사고방식을 고수한다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영적혁명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영적혁명으로 인한 셀그룹을 통해서 종말론적 패러다임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네 명의 말 탄자″ 즉, 전쟁, 기근, 역병, 죽음을 연상시키는 현재의 어둡게 가라앉은 디스토피아라는 21세기의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와 교회고립으로 더 심각해질 전도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전도자를 향한 나의 태도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불신자를 볼 때 총을 쏘기 위해 장전하고 대화가 시작되면 마구 쏘아대는 격의 태도로 나아가는 자세는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성경적인 지식의 말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중심되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고 만나게 함으로 자연스런 체험을 통해 영접하도록 유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나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하시며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하셨다. 믿음의 형제간의 교재와 동행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출 때 모든 약속은 이루어지며 성령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상에서 주님의 영적인 몸이 될 것을 약속하심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본회중인 120명, 비전, 헌신, 가치관, 시기, 과정, 지도력, 구조, 기도 그리고 능력 등으로 이루어진 요소들이 없이는 성육신에 의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혼란의 요소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두려운 일이고 중요하기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대가를 지불하셨듯이 나도 십자가에 못박혀야한다. 그리고 직계가족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협조하며 동의하고 후원해 주어야 할 책임이 주어지고 제자들을 포함한 후원조직을 중심으로 기본회중이 형성되어 그들로 인해 셀교회로 향한 변화와 조화 개조가 가능하며 교회확장은 현실화 될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으로는 부담스럽고 무섭기까지 하며 어렵게 느껴지지만 후원조직의 일원은 마가다락방의 120명에 속하며 그들은 곧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이 임하므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모든 것을 성령의 힘으로 하게 되므로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던 것임을 알기에 염려를 주님께 맡기기로 했다.또한 오순절의 역사는 단회적인 것 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잊지말자. 그것은 언제나 인간의 파괴적인 역사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힘이 계시며 그 성스러운 역사의 도구인 우리를 통해 회복시키시고 복원하시고 혁명을 일으키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숫자가 비록 적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힘을 갖고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무기로 싸워야만 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망갈 때가 없다″ 라고 말한 프레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고 말았다. 나를 쓰시기로 결정하신 주님 앞에서 이제 더 이상 숨을 수 있는 곳은 없다. 마구 달리는 말에서 내릴 수 없는 상황임을 즉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처음부터 막다른 골목인줄 알았다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아니다 나의 선택영역이 아니다. 듣기만 해도 벅찬 희생과 인내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온전히 순종했던 다윗과 같이 될 수 있을까? 옆에서 보기만 해도 힘겨워 보이던 목회자와 같은 사명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등.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리고 기쁨으로 순종할 것은 태초부터 계획하신 역사는 인간을 통해 이어지며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외침과 나팔소리와 함께 끝나며 그 수고를 성실히 갚아 주실 것이다.
눅9:23~26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헌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믿음이다. 그 헌신은 준비된 자를 통해 빛을 발한다. 셀리더로서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셀교회가 핵심집단을 만들어 내려면 리더가 먼저 예수님의 셀교회 체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기초가 이루어질 때 이 땅의 교회가 두날개로 즉 대그룹과 소그룹이 공존함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를 이루려면 예수님께서 설계하신 교회로 회복하고 복원하는 길 뿐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고 밟고 다니던 마른 뼈에 호흡이 들어가 생명을 얻기만 하면 즉시 군대가 되어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그분의 성장하는 몸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살아계신 삶의 연장이다. 셀교회의 구조를 갖출 때 그 구조는 최초 지도자들의 육성 셀공동체육성 새신자양육 재생산과 성장 셀교회하부구조의 수립으로 틀을 만들므로 그분의 목적과 임재 능력이 재현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이신 주님을 본받아 지금도 살아계시어 역사하심이 나를 통해 들어날 수 있도록 주님만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합하여 주님의 호흡으로 생명 있는 셀교회가 우리 동경한인장로교회를 통해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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