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반 간증문
최은애
하나님 날 사랑하심에 도취 되어 나만의 아버지로 끌어 안은 채, 나의 일상에 묻혀 살아왔다. 분명 (대학을 졸업하고) 주의 충성 된 사역자가 되겠노라는 뜨거움이 있었고,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던 열심도 있었던 나였는데 결혼이라는 이유로, 아기를 돌봐야 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이전의 열정과 열심을 잠시 미뤄둔 채 지금 주어진 내 일상의 역할에만 충실하여 지냈다. 그러던 중 남편에 의해 일본에 오게 되었고, 동경한인장로교회를 만났으며 오늘의 이 양육을 받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여전히 학문적인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거니 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은 이 양육을 통해 우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으며, 나의 기본적인 습관들을 바꾸기로 하셨다. 나에게는 언제부터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좋은 선물 상자가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나는 뜻밖의 좋은 일도 많이 있었고, 위로가 되었으며 살아오는데 큰 힘이 되었다. 나는 그저 나에게 있어 내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그 선물상자에 감사하고, 또 기뻤다. 그래서 굳이 뚜껑을 열지 않았다. 뚜껑을 여는 방법을 몰랐으며, 굳이 열지 않아도 나에게는 충분한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육을 받으면서 나의 선물상자는 뚜껑이 열려버렸다. 그 안에는 내가 막연히 좋다 여겼던 선물상자의 본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양육을 통해 그저 주의 사역자로 충성하겠다는 뜨거움이 아닌, 내 뿌리가 주의 충성된 사역자로 서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 진정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역자의 기쁜 생활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 수 있었고, 또한 사역자가 들고 나갈 복음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정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을 이러한 지적인 깨달음보다도 매일 체크했던 기도와 성경읽기, 큐티를 통해 나의 일상과 주의 일이 별개가 아닌, 주의 일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양육을 시작하기 전, 전인적 치유 수양회에서 우리 부부는 함께 방언을 받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 방언에 대한 사모함을 갖게 된 나로서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 때의 은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각자 말씀보기와 기도에 힘썼다. 그 때마다 성령님의 새로운 체험으로 하루하루 감사한 날들을 보냈다. 그런 중 민호가 크게 아팠고, 나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허락하심으로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하셨다.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도 자식을 통해 그 이해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마음을 더 깊이 느꼈을 것이다. 이삭을 바치러 가는 그 3일의 여정 동안 아브라함은 어땠을까 이런 믿음으로 주의 명령에 순종했을까. 나는 민호가 병원에 있었던 약 2주일간의 시간 동안 내 소중한 것을 주 앞에 놓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 주셨지만 나의 것이 아니며, 주님께서 지켜주셔야 하고, 모든 것은 주의 주만 아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내 안에 두려움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주 앞에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 누구보다 가족의 아픔으로 여겨 모두 한마음으로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우리 교회의 식구들을 통해, 내 몸은 비록 교회에 있지 못하지만, 늘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또 외로워야 할 일본 땅이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그것은 교회 식구들의 가족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양육을 시작하면서 이미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만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버려지지 않는 나의 게으름과 싸우면서 나는 내 일상을 바꾸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주의 말씀과 기도가 나의 호흡이 될 수 있도록 혼이 숨을 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쉴 수 밖에 없는 호흡처럼, 되어지는 나의 일상 습관이 되도록 계속해 나갈 것이다. 느슨해 질 무렵, 가한 자극이 되어주시는 나의 스승 목사님을 먼저 본을 삼아 목사님만큼만 그리고 이후 나에게 어떠한 주의 일이 맡겨져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어떤 일에도 충실할 수 있는 주의 충성한 제자가 될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