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めに、今日この場で信仰の証しをみなさんにお話しする機会をくださった
神様に感謝します。
私が教会に来ることになったのは、こんなひとことがきっかけです。
「私が教会に通うようになってから旦那から言われるの。おまえ優しくなったな~って!」
誰が言ったか分かりますか?それを聞いて「ほんと?!教会に行くと優しい人になれるの??!」とすぐに次の日曜日に来ました。
モクサニムノ話しを聞いても賛美歌を歌ってもすごく涙がこぼれるんです。
心がきれいに洗われていく思いでした。
その頃、私は自分のことが嫌いで自信が持てずにいたんです。
離婚して4年が経っていました。前の夫と別れるときは周りの人みんなが反対しました。
客観的に見ればいい人だったんです。(今日はじんチプサがいないから言いやすいんですけど!)毎月くれる生活費は、どうやったら全部使えるのかと悩むほどでしたし、1ヶ月の半分以上も夫は東京にいませんでした。自由な時間とお金がたくさんあったんです。
でも私はどうしても嫌でした。私自身に問題がありました。
はっきりいって、男が嫌いだったんです。
男性を信頼したり尊敬したり、優しい気持ちを持つ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私は小学生の頃から電車で学校に通っていたのですが、毎朝のように痴漢に会いました。怖くて怖くて、誰かに助けて欲しくても回りは気が付かないし、大きな声を出すこともできずに、諦めました。男は汚くていやらしいと思いこみました。また、私の父はよく母を悩ませていました。父のことが大嫌いでした。母の苦労を見て育った私の心には「男なんて期待しないほうがいい。たいした力もないのに偉そうにするし、誠実じゃないし、つまらない生き物だ。」という男性をバカにする気持ちがいつもありました。
そして前の夫に対しても、どうしてもそんな態度をしてしまったのです。
ある日そんな自分が本当に嫌になりました。どうしてたったひとりの夫にさえ優しくしてあげられないんだろう。そんな私の姿を見て育つ娘はかわいそうだし、将来智恵も男性を信頼したり尊敬できない人になってしまう。
私は誰にも愛される資格がないし、誰かを愛することもできないんだ・・・と思いました。愛のない人が自分に自信を持てるでしょうか?けれど子どもの頃からのトラウマはそう簡単には消せるはずはありません。
また、私は娘と二人で暮らしていましたので、自分しか智恵を守る人がいないから、健康が心配でサプリメントを毎日10種類以上飲んでいました。そうしないと不安だったんです。また、もしアクシデントがあっても何としても智恵を守らないといけないと思ってかばんに食べ物飲み物、タオル、ウェットティッシュ、小さいラジオ、懐中電灯まで持ち歩いていました。すごくかばんが重たかったんですが、そうしないと不安だったんです。
けれど、私が教会に通うようになって一生懸命お祈りすると、色々変わり始めました。健康問題や、小さな願い事が一つ一つ解決されると、神様から愛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確信できたのです。
誰にも愛される資格がないと思っていたのに、「神様だけは私を愛して、いつも一緒にいてくださる。いつも私と娘を守っていてくださる。」と感じたら心が楽になりました。
どうしてこんなにも私のことを神様は愛してくださるのか不思議でした。
ますます一生懸命お祈りをしました。家でも娘と賛美歌を歌いました。
お祈りや賛美は生活の一部になりました。
毎月何万円もサプリメントを買っていたのに必要なくなりました。
飲み続けていた喘息の薬も必要なくなりました。
そして、父のことは考えたくもなかったのに、私も今までの父への態度を反省しお祈りするうちに心に変化が生まれました。とにかく父のために毎日祈ってみようと思い始めたのです。また、あんなに男が嫌いだったのに好きな人ができたのです!

と、ここまでの話では、私の信仰生活はとてもスムースにいっ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よね?
でもはじめは反発する心もあったんです。自分のことなのに、何で自分の力で考えて決めないの?いちいち神様にお祈りして答えをもらうなんてありえる?決めるのは自分じゃない?と。実際今まで自分のことは自分の意思で何でも決めて実行していると思っていました。
また教会の人が、私が離婚していることや個人的なことをなぜか知っているのです。
自分の嫌いな部分、恥ずかしいことを知られているのは何だか嫌な気分でした。
けれど、ある日 友美チプサニムが言いました。「ゆきこのこと、涙を流しながらお祈りしてる人がいたよ。」と・・・
驚きました。なぜ親しくもない私のことをそんなに強く祈ってくれるのか不思議でした。
そのほかにも、周りの人がすごく親切にしてくれて、どうしてそこまでよくしてくれるのか疑問だったんです。自分もいい人にならなくては。どうやったらいい人になれるのか。いい人であり続けるのはストレスにならないかな・・・どうやってみんなにお礼したらいいのか・・・と悩みました。そしてある日、石コンサニムに聞いてみました(まあ、コンサニムはとっくに忘れていると思いますが!)すると返ってきた答えはこうでした。「この親切は私がし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様がこうさせているんです。教会に来て礼拝することは神様が一番喜ぶお礼です。」と。そんな日常の小さな行いまで神様が正しく導いてくださっているとは思いませんでした。
神様の大きな愛を感じ、感謝しなくてはいられなくなりました。
信仰によって私の生活は恵みの多いものになりましたが、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
釜山の母オモニムは寺に通っていました。8ヶ月前に日本に来たときも、仕方なく教会に来ましたが、礼拝後、東京タワーに連れて行ったらそこにある大きな寺で長々と祈っていたくらいです。けれど、釜山に帰る日の朝、私はオモニムに言いました。「韓国語も喋れない嫁ですみません。でも、オモニムを愛して、感謝しています。一度教会に行ったからといって神様を信じてくださいとはいいません。けれど、今私たち家族がこうして4人で幸せに暮らしていることは神様の導きだということだけは信じて欲しいんです。」オモニムは笑ってうなずきました。
9月に釜山に行ったとき、私たち夫婦が日曜日に教会に行きました。オモニムもどうしても一緒に連れて行きたかったんです。オモニムは肝臓癌の手術をしたばかりでした。そのときは普通に食事したり、買い物に行ったり、サウナに行ったり楽しむことができましたが、一日も早く神様の存在を伝えて、病気を癒してもらわなくてはならなかったんです。覚えたばかりの讃美歌を家族で歌って聞いてもらいました。その歌詞はうりぬんたんしぬるさらんへよちゅっぽっけよ たんしねさむそっげじゅよんぐわんなたなどろく あなたを愛し祝福します、その命に主の栄光がありますように・・・という歌詞でした。
オモニムはその後教会に通うようになりました。
ところが、突然具合が悪くなって入院してしまいました。癌が転移したのです。
クリスチャンの病院ですので、礼拝堂があります。オモニムは病気の体で1時間もそこでお祈りしていたそうです。自分の母親がお見舞いに来たら一緒に礼拝堂に連れて行きました。アボニムのことも早く教会に連れて行かなくては・・・と言っていました。
急激に悪くなっていく肉体とは反対に、霊的にとても満たされているようでした。
クリスチャンじゃない人がこの話を聞いたら、「教会に行ったら急に具合が悪くなって
神様なんていないじゃないか」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
けれど違いますよね?神様はオモニムの魂が天国に行く道ができるまで、ずっと待っていてくださいました。
今は、全身の痛みが激しくて、麻薬のような強い薬で痛みを抑えています。
その薬を使えば痛みがなくなる代わりに、意識が薄くなってしまいます。
何度か血を吐いてしまって、肉体の状態はとても悪いです。
洗礼を受ける準備をしていますが、意識がない状態ではできませんので、みなさんにお願いします。オモニムが無事に神様の子どもとして迎えられるように祈ってください・・・
さて、そんな肉体が限界の状態でありながらもオモニムは周りに福音を伝え伝道しようとしています。神様が一番喜ばれることでしょう。
けれど私はどうでしょうか。元気な体を持ち、自由にどこにでも行かれて、会話もできます。この神様から与えられた肉体を使って一人でも多くの人に福音を伝えなくてはならないと思いました。
友美チプサニムが言った何気ない一言で私は恵まれて、いまここに立っています。
私たちも絶えずいつも周りにメッセージを発信していくべきだと思います。
神様に出会って、自分のことを愛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そしていま私の周りに愛する人がたくさんいます。幸せなことで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かむさはむにだ。じゅにめさらうろさらはむにだ!



우선 오늘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신앙간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교회에 오게 된 동기는 이 한마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교회에 다니고부터는 남편이 그러더라  당신 착해졌네~」라고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정말? 교회에 가면 그렇게 착한 사람이 돼?」
라고 대답하고 바고 그 주일에 교회에 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찬송가를 불러도 금방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음이 깨끗하게 씻겨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즈음 저는 제 자신이 싫고 자신도 없었습니다.
이혼하고 4년정도 되는 때였습니다.
전남편과 헤어질때 주위사람들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사람이었거든요.
(오늘은 진 집사님이 이 자리에 없어서 말하기가 편하네요)
매월 주는 생활비는 어떻게 다 쓸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한 달의 반 이상은 동경에 없었습니다. 자유로운 시간과 돈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싫었습니다. 제 자신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가 싫었습니다.
남자를 신뢰한다든지 존경한다든지 친철하게 대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학교 때부터 전철로 학교를 다녔는데 거의 매일 아침 치한을 만났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누군가 도와줬으면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았고
큰 소리를 지르는 것조차 못하고 포기하곤 했습니다.
남자란 더럽고 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 저의 친정아버지는 어머니를 많이 힘들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싫었습니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자란 제 마음속에는
「남자란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별것도 아니면서 잘난척하고 성실하지 못하고 별로 가치 없는 생물체다」
라고 남자를 경멸하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남편에게도 항상 그런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런 자신이 정말 싫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단지 한 명 뿐인 남편조차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하는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자라는 제 딸이 불쌍해 보였고 장래 지혜도
남자를 신뢰한다든지 존경하는 것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자격도 없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 자신도 없게 됩니다.
하지만 어려서 받았던 정신적인 상처는 그렇게 간단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저는 딸아이랑 둘이 살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아니고는 지혜를 지켜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건강이 걱정되어 매일 10종류 이상의 건강 보조식품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혹시 사고라도 있으면 어쨌든 지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방에는 항상 먹을 것, 마실 것, 수건, 물수건, 작은 라디오, 손전등 등을 넣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가방이 무척 무거웠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있기 시작했습니다. 건강문제, 작은 소원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면서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사랑 받을 자격이 없었는데 「
하나님만은 나를 사랑하시고 항상 함께 계신다. 항상 나와 내 딸을 보호하고 계신다.」 라고 느껴져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지 정말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점점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집에서도 딸아이랑 찬양을 했습니다.
기도와 찬양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매월 몇만엔을 드려 건강식품을 샀었는데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천식이 있어서 계속 약을 먹고 있었는데 약을 먹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께 했던 태도를 반성하며 기도하면서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아버지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자가 싫었던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남편과 아들도 있어 네명 가족중에 반인 두명이 남자입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로는 저의 신앙생활이 참 평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처음에는 반발심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문제이건만 왜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는지,
하나 하나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결정하지 않으면……이라고.
사실 지금까지 저는 저의 모든 것을 제 뜻대로 결정하고 실행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사람들은 제가 이혼한 것이라든지 개인적인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싫은 부분, 창피한 부분을 알고 있다는 것은 기분 나빴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토모미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유키코상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라고....
놀랬습니다. 왜 친하지도 않은 나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지 이상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왜 이렇게 잘 해주는지 궁금했습니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되겠다. 어떡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계속 좋은 사람으로 있으려면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석권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아마 권사님은 잊으셨겠지만…..)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친절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게 하셨어요.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가장 큰 기쁨이예요.」 라고…..
그런 일상의 작은 행함까지 하나님께서 바르게 인도해주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고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저의 생활은 많은 은혜의 생활이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부산의 시어머님은 절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8개월전에 일본에 오셨을때도 할 수 없이 교회에 오셨지만 예배후에 동경타워에 모시고 갔더니
거기에 있는 커다란 절에서 긴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산에 돌아가시는 날 아침, 저는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한국말을 못하는 며느리라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한번 가셨다고 하나님을 믿으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들 가족 4명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믿어주시면 좋겠어요.」
어머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9월에 부산에 갔을 때, 저희 부부는 주일에 교회에 갔습니다.
어머님도 어떻든지 모시고 가고 싶었습니다.
어머님은 간암수술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보통으로 식사도 하시고, 쇼핑도 가시고, 사우나에도 가시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만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의 존재를 전하고 병의 치유함을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찬송가 외운 것을 저희 가족이 부르며 들려드렸습니다.
그 가사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삶 속에 주영광 나타나도록 당신을 사랑해요. 축복해요…라는 가사였습니다.
어머님은 그 후 교회에 다니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돌연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암이 전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병원이라서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아픈 몸으로 1시간 동안 거기서 기도하셨답니다.
어머님의 어머니, 즉 외 할머님이 병문안 오셨을 때도 함께 예배당에 모시고 갔었습니다.
아버님도 하루라도 빨리 교회에 모시고 가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이 이 소리를 들으면 교회에 가서 더 빨리 병이 악화되었다.
하나님은 없어 라고 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님의 영이 천국에 가는 길을 알기까지 계속 기다리셨습니다.

지금은 전신의 통증이 심해서 마약 같은 강한 진통제가 아니면 통증이 제어되지 않습니다.
그 약을 사용하면 통증은 가라앉지만 대신에 의식이 희미해집니다.
몇번이나 피를 토해내고 육체의 상태는 무척 나쁩니다.  

세례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로는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어머님이 무사하게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한편, 그런 육체의 한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머님은 주위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건강한 몸으로 자유롭게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얘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건강한 몸을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모미 집사님이 아무 뜻 없이 한 한마디에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쉬지 말고 주위에 메시지를 전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주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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