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듯하다. 아니 분명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 길지 않은 나의 인생에 역사하셨던,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역사하고 계신 주님의 흔적을 내 짧은 문장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분명 내 인생뿐만 아니라, 나의 작은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알고 살았다. 그러나 아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 이상의 어떤 열매도 없는 나 혼자만의 만족감. 때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이끄셨던 아버지, 때로 엉뚱한 것을 달라고 때를 쓰고 애원을 해도 절대 이를 썩게 하는 사탕을 물리지 않으셨던 그런 내 아버지. 나는 그 분을 그저 나를 아주 사랑하시는 내 아버지라고, 다행스럽게 가슴 쓸어내리며, 만족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저 아버지의 딸로.

   이제 아버지는 나를 아버지의 “아름다운 딸”로 다듬으시려 한다. ‘아름다움’은 본래 ‘앓음다움’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앓음다움’이란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는 상태를 말한다. 즉 고난과 고통을 이겨낸 뒤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존재의 모습. 그것이 ‘아름다움’이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성숙된 사역자로 거듭나기 위한 ‘앓음’을 시작하고 있다.

  전인적 치유를 시작으로 우리 부부는 많은 은혜를 받았고, 실제적인 우리의 일상에 그 은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양육이 시작되었고, 매 시간 무릎을 치는 깨달음을 얻으며, 말씀과 기도에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민호(아들)가 두 번 크게 아팠다. 민호의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 나는 안타까움과 두려움으로 약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은혜에 대한 허무함으로 주저앉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의 초점은 민호의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사역에 맞춰지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전인적인 소그룹,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가 하나 되며, 성령의 역사로 서로가 서로를 책임진다. 닥친 문제에 대해 기도는 물론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간다. 동경한인장로교회는 이미 하나님이 만들어 가고 계셨음이 확실하다. 모두가 내일처럼, 내 아이처럼 아파하고, 도와줄 것을 찾아 나를 위로했다. 처음 민호의 병을 알고 생각했다. 일본에 오지 않았다면 민호가 아프지 않았을까. 어리석은 생각인 것을 이제는 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를, 남편을, 그리고 우리 민호를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이제는 확신한다.

   나는 그저 배우는 제자였다. 그러나 이제 ‘보냄을 받은 자’인 사도와 같은 제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우리는 모든 족속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제자 삼아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부터 훈련되어야 한다. 그 훈련을 이미 일본으로 오게 되기 전부터 하나님은 예비해 놓으신 것이다. 내 인생의 핸들을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맡기기 위해, 주님의 통치하에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기 위해 훈련되어야 한다. 여전히 나의 옛 사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려 하기에 더욱 훈련되어야 한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지시하시고 그리로 떠나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곧 지시할 테니 우선 너는 떠나라고 하신다. 목적지를 알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실 것을 믿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알아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신다. 내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나를 연단하실 것이다. 나의 연단의 과정에서도 이미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마리아의 훈련을 잘 감당하기를 때마다 아버지께 간절히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