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파일을 웹하드에 올려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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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tokyo21
PW:2121

웹하드의 용량관계로 2-3개월의 분량만을 남기고 정기적으로 지워지고 있습니다..
매주일 설교(음성자료)가 준비 되어있으므로 듣고 싶은 날자를 리플로 달아주시면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11.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6장 47-56절
제목 : 군호의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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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말씀하실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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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실망을 하게 되지만, 그 중에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는 것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오는 아픔과 상처일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당신의 사역 중 가장 큰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이 육체적으로는 가장 아픈 고통이었지만, 사역에서 심적으로 받는 가장 큰 고통의 모습이 오늘 본문의 모습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의 “군호의 입맞춤” 앞에 아파하셨던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군호의 입맞춤으로 주님께 어떠한 아픔의 상처를 드리고 있는지 생각하며 우리의 신앙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1. 군호의 입맞춤은 배반의 표식이었습니다. (47절 상: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예수님이 가장 힘들고 어려워 죽게 된 지경에 이른 겟세마네 기도의 현장 속에 가룟 유다는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 유다는 주님 곁을 떠나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함께 예수를 넘길 군호의 표적을 짜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저버렸던 것입니다. “배반”이라는 것은 저버렸다는 뜻입니다. 물론 다른 모든 제자들도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저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모습에 대해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은 그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정말 예수님과 함께 하고 함께 깨어있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단, 육신이 따라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마음은 주님의 곁을 떠나 있었습니다. 지금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 앞에 입맞춤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가장 먼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주님 앞에 나올 때에, 내 육신은 주 앞에 있다고 하면서 내 마음, 뜻, 그리고 생각은 주님을 멀리 떠나 있지 아니한지, 또한 예배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은 주 앞에 이르러 있지만 내 마음은 어디에서 무엇을 쫓아다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배반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치 죽음이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듯이,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서 떠나 있다는 것은 몸이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한 순간도 주님 앞에 서 있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비록 내 몸이 따라주지 못 하더라도 내 마음은 그 곳에 두어야 합니다. 다른 열한 제자가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주님과 깨어있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주님 곁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라도 인정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며 입맞추고는 있지만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미워하는 중심을 가지고 있는 유다의 입맞춤과 같은 배반의 표식이 우리 신앙의 삶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자행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체면과 나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 배반의 표식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신앙의 삶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지 않은지, 가룟 유다의 입맞춤을 통하여 날마다 점검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군호의 입맞춤은 방향이 달랐습니다. (47절 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여러분, 제자의 삶은 주님이 바라보시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야 할 곳을 따라서 같이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함께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지금 모두 주와 함께 내려가며, 주님께서 바라보시고 걸어가시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방향은, 그렇게 내려가시는 주님의 정면에 서서 그 걸음을 멈추게 하는 잘못된 방향이었습니다.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떠한 이유가 됐던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곳에 그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발 딛는 곳에 우리도 함께 발을 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 한 곡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자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그렇습니다. 제자의 삶은 주님이 뜻하는 곳, 주님이 향하는 곳, 주님이 마음 둔 곳으로 향해야 하고, 걸어가야 하고,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의 삶의 방향이 주님께서 원하시고, 바라보시고, 가라 하신 곳을 향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주님을 마주보고 그 분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버지께서 나를 파송하는 그 곳에 달려가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의 그 발걸음 앞에 서서 “주님, 멈춰 서십시오”라고 말하는 주님의 삶의 방향의 제어가 내 안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여러분, 가룟 유다의 군호의 입맞춤 앞에 다시 한번 바라봐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군호의 입맞춤은 왜곡된 사랑이었습니다. (49절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사랑에는 표현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표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입맞춤입니다. 입맞춤은 곧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 것입니다. 나의 존경을 상대에게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은 신약시대 초대교회의 많은 교우들에게 서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만큼 입맞춤이라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안부를 묻고 서로에게 존경을 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5:14절에는,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의 평강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모습이 바로 거룩한 입맞춤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을 왜곡되이 표출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할 이 입맞춤이 가장 가증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사랑을 빙자한 위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위선을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의 위선적인 표현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예수에게 입맞춤 함으로 말미암아 그 표식으로 이 사람을 잡아가라는 죽음의 의미의 입맞춤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입맞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고 서로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입맞춤에는 아무런 조건 없는 모습의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에 조건이 생긴다면 그것은 그 때부터 더 이상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할거야…” 라고 기대하는 모습은 사랑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사단은 아주 교묘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순수하게 머물러야 할 사랑을 나 자신의 영광의 모습으로 변해가게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 무조건적으로 행하며 나누어야 할 그 사랑이 오히려 예수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자신의 세력과 위치를 높이려고 하는 모습으로 얼마나 악용되고 있습니까? 숨겨진 사랑, 드러나지 않는 사랑이어야 하는데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그래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해 나가는 그러한 모습에 우리 스스로도 속고 있지 않습니까? 베풂 또한 나 자신의 위치 확보, 나 자신의 자아로 변질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의 행위는 사단이 틈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여러분, 사랑은 상대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가 나를 사랑했으니까 나도 너를 사랑한다”라고 얘기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온전함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최고의 절정이 무엇입니까? 인내인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가장 중요한 본문에서 빠지지 않고 하나씩 나오는 것이 인내입니다. 오래 참음, 인내, 마지막까지 견디는 그 모습이 사랑의 결실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인내의 세월과 고통을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잘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 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을 빙자한 왜곡된 사랑으로, 아니, 그 모습조차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러분 바라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4. 군호의 입맞춤에는 자신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5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예수님은 유다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당신에게 나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힘들어지고 거칠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치우쳐서 자신의 목적만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방법과 수단도 가리지 않고, 과정이 어떻든 목적을 이루는 데에 올인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 달성에 모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더 삭막해지는 것입니다. 이 말은, 목적 없이 인생을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제일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나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것이 내 인생의 제일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아직까지도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으며, 교회 안에서도 주님의 영광에 이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영광에 이르려고 하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잘되기 위한 조건부로 와 있는 것입니까? 불안한 삶 가운데 평안을 얻기 위해 와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예배의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같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먼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우선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소원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우선순위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이 우선 되고 그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졌을 때에,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하늘의 위로와 평강, 축복과 권세가 그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차선적인 것에 우선순위를 두려고 하고, 이 부분에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룟 유다가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제일로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목적을 제일로 했을 때에 그는 주님을 자신의 입맞춤으로 팔아 넘겨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제일의 목적은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명과 그분의 영광이 내 인생의 오로지 하나의 목적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의 군호의 입맞춤과 자신의 목적 가운데 분명하게 차 있던 그 사람의 실패하는 모습을 통해서,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한 목적이 오히려 나를 패망케 하는 길임을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깨달을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군호의 입맞춤이 아닌 정말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랑의 입맞춤이 저와 여러분의 입술 가운데에 주님 앞에 드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녹취:오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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