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6:10-16                                                                                                                  2006.1.1.신년주일감사예배
벧세메스 길로                                                                                                           동경한인장로교회 김용수목사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이 2006년1월1일입니다.
  신년 첫 날을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2006년도 우리가 하나님께 바라고 소망하는 거룩한 일들을 생각할 때에 올 한해 주어지는 이 시간이 귀한 시간이 아닐 수 없고 또한 주어지는 이 시간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정진해 나가야할지에 대한 첫 디딤돌이 되는 시기이기에 더욱더 신중한 모습에서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심임을 볼때에 신년 첫날 어떤 말씀을 전해야할까 생각할 때에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의 걸을음 생각해 보면서 이 두 암소가 걸어갔던 길이 우리가 2006년 한해를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닌가 하기에 오늘 말씀을 상고하려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좀 살펴야겠습니다.
  당시의 제사장은 엘리였고 블레셋과의 전쟁이 불가피 했습니다.(삼상4:1-4)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4,000이 전사하며 패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궁리 끝에 여호와의 실로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는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여 승리하자는 결론에 이릅니다. 결국 다시 전쟁을 치르는데 이번에는 30,000명의 이스라엘 군대가 전사하고 하나님의 언약궤 마저 블레셋 손에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러집니다.(삼상4:10-11)
  이제 문제는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에게 생기게 됩니다.
  전쟁의 승리의 전리품으로 빼앗아온 여호와의 언약궤를 통해서 블레셋에 여러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언약궤를 두었던 아스돗의 다곤신당에 다곤신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져 있고 다시 세웠으나 또 엎드러져 목이 부러지고 손이 부러지고 몸통만 남게됩니다.(삼상5:4)
  그 뿐만 아니라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종의 재앙이 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망케 됩니다.
  이에 여호와의 궤를 가드로 옮겨갔으나 그곳에서도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다쳐서 독종이 발하게 되자 다시 에그론으로 보내게 되는데 에그론 사람들이 반대하며 나서자 블레셋의 모든 방백의 회의결과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본처로 돌려보내어 죽음을 면케 하자는 결론에 이르고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새 수레와 멍에를 메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에게 멍에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곳 벧세메스로 가게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가는 길을 통하여 우리가 걸어야할 2006년의 신앙의 길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첫째, 우리가 지고 가야할 멍에가 있는 길입니다.(10절)-'수레를 메우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우리가 지고 갈 짐이 있는 길입니다.
  비록 멍에를 한번도 메 보지 아니한 암소들이었지만 그렇다해서 지고 가야할 멍에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걸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서 가는 길,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서 가는 길, 우리에게 주진 새로운 한 해를 걷는 길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멍에를 메고 가는 길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게는 처음 메는 멍에 일수는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감사함으로 메고 가야합니다.
  오늘 새로운 직분을 임명받은 분들도 전혀 메 보지 아니한 멍에 일 수 있지만 감사함으로 메고 갑시다.
  만약에 우리 인생을 걸음가운데 우리가 지고 가야할 멍에가 없다면 우리의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멍에가 우리에게 짐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걸어 가야할 이유가 또한 그 멍에에 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멍에가 없다면 편안하게 가는 길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세상을 유리 방황하는 자의 삶의 모습으로 밖에는 우리의 모습이 연출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고 우리에게 메어진 멍에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흘려야할 눈물이 있는 길입니다.(12절)-'울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웃음으로 기쁨으로만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울며 눈물로 걸어 가야하는 아픔이 있는 길입니다.
  젖먹이 새끼를 두고 가는 어미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까? 송아지는 젖달라고 우는데, 나를 두고 어디 가냐고 하는데 그것을 뿌리치고 가야하는 어미의 마음을 말로 드러낼 수 없어 그저 눈물로 그 길을 걸어야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도 우리의 삶을 통하여 흘려야할 눈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면 안될, 눈물을 통해서 깨닫고, 눈물을 통해서 바라보고, 눈물을 통해서 이루어야 할 일들이 우리게 있는 것입니다.
  나의 눈에 눈물이 있을 때 아직 나에게는 소망이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6년 한 해를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흘려할 눈물이 많이 있음을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삶을 통하여서 고백해 나아갑시다.
  우리는 어미 소와 같은 안타까운 눈물의 길을 걷지만 우리가 흘린 눈물의 자욱 위에 피어날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봅시다.



셋째,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앞을 향하여 가는 길입니다.(12절)-'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앞만 향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길입니다.
  소들에게 있어 귀소본능은 뛰어납니다. 여름에 소에게 꼴을 뜯기고 나면 주인은 막걸리 한잔에 아직 시원한 들판의 잠을 자고 있더라도 소들의 석양에 집으로 향하는 걸음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 집을 잘 찾아갑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소들도 자기의 집을 향하고픈 본능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걸어야할 길은 젖먹이 송아지가 있는 집이 아니라 사명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전혀 학습되지 않은 소가 처음 가는 낯선 길을 그것도 처음 멘 수레를 끌고 새끼들의 울음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앞만 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갈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끄심이 없었다면 전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는 길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사명의 길을 걷지 못하게 우리를 유혹하는 수없이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냉철하기에 우리의 사명의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기에 사명을 온전하게 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케 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있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이루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주관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온전히 서있을 수 없습니다.
좌우로 치우치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우리의 사명의 길에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로서는 순간순간 주의 인도가운데 앞만 향해 가야합니다.
눅9: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마지막으로, 벧세메스로 가는 길은 순교의 제물이 되는 길입니다(14절)-'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잘 도착했기에 그 소들에게 꼴을 주고 쉼을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레의 나무는 패서 자신들을 태울 땔감으로, 자신들의 몸은 제물로 드려지게 되는 길이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의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걸음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이 땅에서 영화를 누리고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며 살려고 벧세메스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것을 누리려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쪼개어 번제로 드릴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주님께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제물로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그 고통의 끝을 걸어가셨습니다. 이것이 벧세메스로 가는 순교의 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길이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의 길을 걷기 전에 그 고난의 길 그 순교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바랍니다. 여러분!!!
  200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06년 새해,
  우리 모두가 다 벧세메스로 향하여 가는 두 암소와도 같이 내게 주어진 새로운 멍에를 메고 눈물의 골짜기를 넘어 앞만 향하여 가되 우리의 삶을 드려 주님의 뒤를 따르는 복된 한 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