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1-7                                                                                                                           2006.3.26.주일오전예배
웃게 하시는 하나님                                                                                                    동경한인장로교회 김용수목사

여러분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니까 사회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현대인들 두고 '웃음을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합니다.
한주간 동안 박장대소하면서 웃었던 일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80세 노인의 일생에 잠-26년, 일-21년 TV보는데 7년, 밥-6년 기다리는 것-6년
웃는데 보내는 시간은 22시간을 웃었습니다.
80평의 생에 동안 하루를 못 웃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옥스퍼드대학의 의과대학연구팀이 연구발표한 바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이 하루400-500회 웃고 어른들은 15회에서 20회 웃는다고 합니다.
인생은 웃으면서 태어나서 웃으며 살다가 웃음이 끝나면 죽- 습- 니- 다.
나는 얼마나 웃고 사는가?
웃음의 횟수가 줄었다는 말은 얼마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ㅋㅋ

웃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있기에 웃지 못합니다
노원핀센트 필 목사가 쓴 '쓸 때 없는 걱정'이란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도 아닌데 걱정하는 것이 22%
아무리 신경 써봐야 바꿀 수 없는 일에 걱정하는 것이 4%
신경 써서 될 일이 고작 4%
96%의 쓸 때 없는 걱정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틀 동안만 걱정하지 않고 산다면 평생을 웃으며 행복하게 삽니다.
어제와 내일입니다.
지나간 과거 어제일-
아직도 오지 않았는데 불길한 상상과 예측으로 불안해하는 내일일-

우리 한국사람들은 특히 잘 안 웃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사람들은 잘 웃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경박하고 품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논어의 가르침, 유교의 가르침에는 절대로 입을 벌리거나, 이빨을 내밀고 웃는 것이 경박하고 값어치 없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이후 500년 동안 한국사람들은 웃지 않는 것이 근엄하고 품위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연습해 왔기 때문에, 어둡고 딱딱한 권위와, 형식 속에서 솔직한 즐거움의 기쁨과 웃음이 별로 없는 삶을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살아온 우리들의 이러한 생리 속에서, 표현이 솔직하지 못한 인격자로 발전되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사람들은 코미디를 보면 배꼽을 잡고 웃는데, 한국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잘 웃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나라 사람들의 태도에 따른 결과인데, 미국 사람들은 ‘한번 웃어보자'는 태도인 반면 한국인들은 '그래 어디 한번 웃겨봐라’는 태도로 코미디를 대합니다. 같은 예배를 드리시더라도 ‘은혜 받아보자’생각하면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부탁드되 ‘어디 한번 은혜 좀 끼쳐봐라’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잠언 17:22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 했습니다.
웃으면 건강이 온다는 성경 말씀입니다. 프랑스의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웃음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웃음은 우선 폐와 기도를 확장시켜 공기의 유입과 배출을 촉진시켜 주고 상부 호흡기를 청소해 호흡을 정상화시켜 주며, 웃음은 또 신경성 위장 장애와 신경성 고혈압, 신경성 심장병, 신경성 두통을 비롯해서 우울과 히스테리 같은 신체와 정신의 병을 다스리는 치료제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랍니다.

웃음에 관하여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조사해본 결과 15초 동안 웃는 것은 달리기로 9분을 뛴 것 같은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억지로 웃는 표정만 지어도 뇌가 반응해서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암도 불치의 중병도 치료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소문만복래'라고 했습니다. 웃는 집에는 많은 복이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또 '일소일소 일로일로'라고 했습니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분노하면 한 번 늙어진다는 뜻입니다.

그 뿐입니까? 예부터 그 집안이 잘 되려면 세 가지 소리가 담장 밖으로 흘러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천 따지" 글 읽는 소리, 다음은 절구통을 찍고 다듬이질하는 소리, 그리고 세 번째는 웃음소리였습니다. "성공하려면 웃는 연습부터 하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교수 황수관 박사도 웃다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매일 일어나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웃음처럼 좋은 화장품은 없습니다. 늘 웃으면 미운 사람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요즘은 말 잘하고 잘 웃는 여자를 며느리 감으로 선호한다고 합니다. 사위 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처녀총각 있으면 서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크리스천치유목회연구원원장인 정태기 박사는 "사람이 박장대소하는 웃음 1회에 400만원의 가치가 있다" 했습니다.

홍콩의 한 항공사 승무원들은 회사측과 임금 협상에 난항을 겪자 "웃음 짓는 서비스만 파업하겠다"고 경고했다고 합니다. 깍듯한 인사와 따뜻한 미소가 생명인 항공사 승무원들이 웃지 않겠다면 그것은 항공사가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가장 못 잊은 사람도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들입니다. 아프리카 탐험가요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턴"도 자기가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동기가 어렸을 때 어느 목사님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얘야, 너도 선교사가 되고 싶니?"하고 물었을 때였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은 자녀를 위한 기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자녀가 되게 해 달라"는 구절을 빼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네기의 <웃음예찬>을 보면 "웃음은 별로 소비되는 것은 없으나 건설하는 것은 많으며, 주는 사람에게는 해롭지 않으나 받는 사람에게는 넘치고, 짧은 인생으로부터 생겨나서 그 기억은 길이 남으며, 웃음을 가지고 정말 가난한 사람도 없다. 웃음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친구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하고 피곤한 자에게는 소망이 되고 우는 자에게는 위로가 되며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 그런데 웃음은 살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으며 도둑질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인 사람들이 신바람 나게 웃고 사는 모습을 보시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신체 구조를 웃고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미국 로마린다 의과대학의 웃음학 교수 리버크 연구팀이 웃음의 효과에 대하여 밝혀냈습니다.
  종양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킬러 세포가 증가하고 활성화 되고
  인체 면역기능을 하는 감마 인터페론이 증가하고 반면에 스트레스 호르몬은 줄어든다.

  까뮈의 책에서 나오는 한 토막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정신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병실에 진료 차 들어갔더니 환자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목욕탕에 쭈그리고 앉아 낚시 줄을 집어넣고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에게 다가가서 시치미를 뚝 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많이 낚았나요?” 그랬더니 환자가 의사에게 눈을 크게 뜨고서 “여보시오, 의사선생님 정신이 있습니까. 목욕탕에서 무슨 물고기를 잡는단 말이요?” 오히려 호통을 쳤습니다.  

사람들이 웃는 소리도 가지각색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웃움은 Ha Ha Ha이고, 살인마의 웃음은 Kill kill kill (kill은 "죽이다"라는 뜻), 요리사의 웃음은 Cook cook cook (cook 은 "요리하다" 라는 뜻), 축구 선수의 웃음은 Kick kick kick (kick은 걷어찬다는 뜻), 수사반장의 웃음은 Who who who who (who 넌 누구냐? 라는 뜻), 악마의 웃음은 Hell hell hell (hell 지옥이라는 뜻)이고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웃움소리는 Kal Kal Kal 이고 딱따구리의 웃음소리는.......(만화영화를 본 사람만 아는 웃음)입니다.

  그런데 성경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웃음이 나옵니다. 첫 째날 빛을 만드신 뒤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둘 째날 빼놓고 6일까지 좋았더라고 하셨으며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보시기에 좋다고 평가했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환하고 밝은 모습입니다.
  시편 2편 4절에도 보면,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고도의 유머감각으로 웃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1절에 보면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는 것보다도, 찌그러진 인상보다도 웃고 밝은 인상이 보기 좋고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시편 42편 11절에도 보면 내 얼굴을 돕는 하나님을 내가 찬송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만 내 얼굴을 돕는다는 말이 바로 밝고, 웃음이 넘치는, 기쁨이 넘치는 얼굴을 가리킴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얼굴에 기쁨과 웃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얼굴에 웃음을 가지면 231개의 근육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운동이 되어서 건강에 좋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인상을 쓰는데는 겨우 64개의 긴장된 근육만이 움직인답니다. 우리는 좀더 웃으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얼굴의 주름을 막고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막지 마십시오. 아름다운 얼굴이 만들어 지고 있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어떻게 웃게 하셨습니까?
첫째, 과거의 아픔을 잊게 하시는 웃음입니다.(창16:4)-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여인의 아픔중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픔만큼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자신의 몸종에게 멸시를 받는 사라....
   우리에게 과거 어떠한 아픔이 있습니까? 그 아픔으로 인하여 우리가 웃고 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둘째,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심으로 웃는 웃음입니다.(창18: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하나님은 도무지 인간의 능력의 가능성이 사라지도록 기다리게 하신 뒤에 이루신 하나님의 솜씨에, 사라는 감격하여 웃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라가 전에도 한 번 웃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아브라함을 방문하셔서 그에게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장막문 뒤에서 듣고 있던 사라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웃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나온 쓴웃음이었습니다. 회의와 의심에 찬웃음이었습니다. 이렇게 회의와 의심에 찬 쓰디쓴 웃음이 이제 기쁨과 감격에 찬 진정한 웃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셋째, 약속을 믿고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웃음입니다.(창17:24)-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이었고
후자가 없는 처음에는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르에셀(창15:2)이었고, 이스마엘이 생긴 이후에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앞에 살기 원하나이다(창17:18)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99세의 할아버지가 양피를 베고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이 주신 웃음은 더불어 웃게 하십니다.(6절 하)-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 웃음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이 웃음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웃을 정도로 축복된 웃음이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진정한 웃음을 웃어보지 못하던 사라가 이삭을 축복으로 받으면서 남은 37년간을 기뻐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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