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35-42                                                                                                                          2006.1.29.주일오전예배
신앙의 첫단계 와보라                                                                                                 동경한인장로교회 김용수목사

이전에 봤던 한 영화가 생각납니다. 한 사람이 다리에 피를 흘리며 산 속으로 도망갑니다. 적들이 사냥개를 몰고 피 냄새를 맡으며 쫓아갑니다. 사냥개들은 점점 그에게 가까이 옵니다. 지칠 대로 지쳐 기진맥진한 그는 한참을 도망가다 강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강에 몸을 담그자 집요하게 따라오던 사냥개의 추적이 멈추어집니다. 사냥개들이 피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 문제를 집요하게 고소하는 사냥개와 같은 사탄의 소리를 잠재우게 됩니다. 십자가는 큰 은혜의 강입니다. 그 은혜의 강에 몸을 담그기만 하면 누구라도, 어떤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용서받습니다. 등산을 하다 갑자기 산불이 나서 불길이 밀려오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요? 내 주위에 맞불을 지르면 됩니다. 그리고 다 타 버린 장소에 서 있으면 불길이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내가 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먼저 심판을 받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서 있으면 됩니다. 이 놀라운 십자가를 우리는 사랑합니다. 이 놀라운 십자가에 우리는 감격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오직 예수에게 있습니다.
다른 곳에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길 예수께 나오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 구원의 주이신 예수 앞에 나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신앙은 예수 앞에 나오므로 시작이 되는데 어떻게 그 일이 이룹니까?
우리가 신앙을 처음 접하게될 때 성경을 읽습니다.
구약보다는 신약을 먼저 읽는 것이 잠을 조금 더 늦게 재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24일간 성경통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이 22일째입니다.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 신약성경을 읽는 때 조는 사람이 좀 덜합니다.ㅎㅎ 그런데 신약도 마태복음부터 있지만 마태복음이 아닌 요한복음부터 읽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마태복음의 누구는 누구를 낳고...는 예수쟁이들은 밥먹고 아이들만 낳나? 하고 성경 읽는 순간부터 시험이 들 수 있습니다.ㅋㅋ)
또한 요한 복음이 단순히 읽기 편리하고 쉬운 모습만 있어서 요한복음을 먼저 읽도록 권면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은 확실한 복음의 제시뿐만이 아닌 요한복음 전체의 흐름을 통해서 신앙의 단계를 잘 그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하면 단순히 믿음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믿음이 다라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믿음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요한복음을 통해서 보면 믿음은 신앙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에 신앙을 어떠한 단계로 그려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궁극적으로 우리 신앙을 성장시키기 원합니다.
첫단계는 1-4장까지 '와 보라'입니다.  來なさいそうすれば分かる. 來て見なさい.
   요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요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요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둘째단계는 5-12장까지 '믿음'입니다.
      믿음이 들어 있는 성경구절 83절중 48절이 이 안에 있습니다.
셋째단계는 13-21장까지 '사랑'입니다.

오늘은 신앙의 첫단계인 신앙의 입문 '와 보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부담 없는 단순한 제시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복음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나를 믿어라. 내가 구세주다. 내가 길이다라고 하지
  여러분 지금 전도하는 사람에게 십일조 해야하고 전도해야하고...새벽기도 철야기도 나와야한다고 말합니까?
그렇게 구구절절이 말하면 오기도 전에 "너나 잘하세요" 할겁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방법을 쓰면 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와보라 하는 것입니다. 같이 가자 하면 됩니다.
전도하려할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못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 알아도 안합니다.
욉니까? 내가 구원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와보라하면 내 임무는 끝입니다.
왜 단순한 간단한 제시만으로 되는 겁니까? 그 이후의 일은 주님이 다 알아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하는 것 아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감자 고구마 심어놓고 자라나 안자라나 보려고 자꾸 파보면 되겠습니까?
나는 심은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심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다 자라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감자나 고구마 심어보셨나요? 심어놓고 날마다 얼마나 자랐나 다시 파봅니까? 그러면 그 감자 고구마 자라지도 않습니다. 심었으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련히 자라겠습니까? 최소한 농부가 땅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만 합니다.
복음의 단순한 제시만 있으면 됩니다. 얼마나 매력 있는 말입니까?
토모미상이 도쿠마스상을 전도했습니다. 만약에 다 알아서 했다면 전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교회 출석한지 4개월인데 무엇을 알아서 전도하겠습니까? "교회 가니까 좋아요 같이 가보세요" 이 얘기가 적중했습니다. 간단한 제시였습니다.


제한 없는 포괄적인 제시입니다.

와보라는 특정한 대상에게 제한되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열려져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드레에게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사마리아여인은  성 사람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복음엔 가려질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복음이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 생명도 복음을 피해서는 구원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가운데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업적인 관계로만 만남을 이루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복음을 가진 자의 시각이 아닙니다. 복음을 가진 자의 시각은 복음의 제시자로 전도대상자로 내게 맡기신 생명들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에 있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되길 바랍니다. 세상에 누가 복 없는 사람입니까? 아무리 둘러봐도 예수 믿는 사람이 주위에 없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입니다. 혹시 예수 믿는 사람이 있어도 '와보라'는 복음의 제시를 하지도 않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사람 참 복 없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받아드리기 어려운 자들은 있을지 몰라도 분별 되이 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흥미로운 제시입니다.

교회에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을 많이 초청합니다.
우리교회에 욌다간 연예인이 있습니다. 배영만, 이혁재, 김자옥권사등등... 다 왔다갔습니다. 혹시 못보신분들은 교회 홈피 열어보면 다 있습니다.ㅎㅎ
지금은 누구를 섭외중이냐 하면 배용준을 섭외중입니다.
배용준이가 다녀간 식당은 줄을 섭니다. 배용준이 앉았던 자리는 365일 예약이 차있습니다. 일본 아주머니들 음식을 시켜놓고는 한 숟가락 먹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눈물만 주루룩 흘리고 돌아갑니다. 그리곤 다음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똑같이 앉았다가 갑니다. 일년 내내 그 자리가 메워터집니다.
그래서 저는 욘사마를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야겠습니다. 한 자리에만 앉히는 것이 아니고 의자마다 돌아가면서 앉혀놓고 보내야겠습니다.ㅎㅎ 욘사마만 교회에 들어오면 일본선교 반은 끝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와보라는 흥미를 유발하는 제시가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
영향력이 발휘되 복음이 전해지는 경우입니다.
로마가 324년 콘스탄틴대제 때 기독교를 공인한 것도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증거된 경우입니다.


기대감을 주는 제시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면 못 견디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대심리가 발동됩니다.
네가 알지 못하고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육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진집사님이 처음 교회오신 이유가 뭔데요? 여자 꼬시려고 왔습니다.ㅋㅋ
여자 꼬시려고 왔다가 코꼈습니다.
사람이 처음 관심을 갖는 것은 육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탄절, 부활절은 어린이들이 특별히 많아지는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대심리입니다. 가면 뭔가 준다는 것입니다. 부활절날 가면 삶은 계란 꼭 줍니다. 성탄절날 가면 선물 꼭 줍니다.
육적인 것을 얻으러 왔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가면 이것만큼 복된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무엇을 찾으러왔던 일단 예수를 만나게 됐다면 그것만큼 귀하고 복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자신있는 제시입니다.

영원한 생명, 복음에 자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확실한 생명의 주되시매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그 분을 소개하고 그 분을 알리는데 우리가 무엇을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말하는 것 중 가장 진실 되고 참 말을 하는 것은 예수에 관한 말입니다.
참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도 걸림이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말을 숨기고 아껴야 하느냐는 것입니까?.
목사도 이만하면 잘생겼잖아요? ㅋㅋ
성도들도 얼마나 착합니까?  
교회도 이 정도면 일본에서는 아주 좋은 조건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에 무엇에 자신이 없어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까?
혹시 목사가 성도가 교회가 좀 따라주지 않아도 목사보고 나오는 것 아니고, 성도보고 나오는 것 아니고, 교회 건물보고 나오는 것 아니죠. 예수보고 나오는 것 아닙니까?
자신 있게 '와 보라'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        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이 그렇게 멋없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와 보라'라고 선포하시며 외치기 바랍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신앙의 첫걸음은 예수 앞에 와야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만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아직까지 예수 앞에 와보지 못한 자들에게 그 길들을 우리가 열어 놓아야 할 책임과 본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냥 우리는 '와 보라'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오기만 하면은 믿음은 자연히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것 - 아직까지 신앙의 첫단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이들에게 이 복음의 제시를 통하여서 나 자신이 복음의 첫단계에 들어 있는 자임을 증거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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