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 나를 위한 하나님이신가?

본문 = 예레미야 21:1-7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  
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의 왕과 또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과 싸우는 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를
내가 뒤로 돌릴 것이요 그것들을 이 성 가운데 모아들이리라
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6) 내가 또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성에 있는 것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본문의 이해
유다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위협 속에서 예레미야에게
도움의 기도를 요청하려고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20장의
임멜의 아들 바스훌과는 다른 인물)과 스바냐를 보냅니다(1-2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신적 전사가 되어
싸워주시기를 요청하는 시드기야에게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이 싸움을 일으키신 주체임을 밝히십니다(5절). 시드기야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아닌 시드기야와
남유다의 손에 들린 무기를 무력하게 하실 것입니다(4절).
그동안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짐승을 쳐서
전염병으로 죽게 하실 것이며, 남은 자들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칼에 의해 죽게 될 것입니다(6-7절).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를 긍휼히 옂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다시 한 번 확언하십니다(7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위급할 때 기도 몇 번 하는 것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 분은
우리의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시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는 분이십니다(렘17:10). 이것이 이방의 신들과
유일하신 하나님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
시드기야는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사용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잇게 해달라고 기도를 요청합니다.
삶의 필요를 위한 기도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잘 되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모습은 이방신들을
대하는 태도와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나’입니까?
아니면 ‘나를 위한 하나님’입니까?



本文=エレミヤ21:1-17

1 主からエレミヤにあったみことば。
ゼデキヤ王は、マルキヤの子パシュフルと、
マアセヤの子、祭司ゼパニヤをエレミヤの
もとに遣わしてこう言わせた。
2 「どうか、私たちのために主に尋ねてください。
バビロンの王ネブカデレザルが私たちを攻めています。
主がかつて、あらゆる奇しいみわざを行なわれたように、
私たちにも行ない、彼を私たちから離れ去らせて
くださるかもしれませんから。」
3 エレミヤは彼らに言った。
「あなたがたは、ゼデキヤにこう言いなさい。
4 イスラエルの神、主は、こう仰せられる。
『見よ。あなたがたは、城壁の外からあなたがたを囲んでいる
バビロンの王とカルデヤ人とに向かって戦っているが、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手にしている武具を取り返して、
それをこの町の中に集め、
5 わたし自身が、伸ばした手と強い腕と、怒りと、
憤りと、激怒とをもって、あなたがたと戦い、
6 この町に住むものは、人間も獣も打ち、
彼らはひどい疫病で死ぬ。
7 そのあとで、――主の御告げ。――わたしは
ユダの王ゼデキヤと、その家来と、その民と、この町で、
疫病や剣やききんからのがれて生き残った者たちとを、
バビロンの王ネブカデレザルの手、敵の手、
いのちをねらう者たちの手に渡す。彼は彼らを剣の刃で打ち、
彼らを惜しまず、容赦せず、あわれまない。』」



*本文の理解
ユダの王セデギヤはバベロンからの危機の中でエレミヤに助けの祈りを要請するためにマルキヤの息子パシュフル(20章のイメルの息子パシュフルとは別の人物)とゼパニヤを送りました。(1-2節)しかし神様は自分の安易のために戦士となり戦いを要請するゼデキヤに返って神様自身こそがこの戦いを起こしになった主体と明かしました(5節)ゼデキヤの期待とは裏腹に、神様はバベロンではなく、ゼデキヤと美馬にユダの手に持たれた武器を無力かなされます。(4節)今までエレミヤが、神様の御言葉を代言したように、神様はイェルサレム城の中になる全ての人と動物を伝染病で死なせ、残った者はバベロンのネブカデレザル王の剣によって死ぬことになります。(6-7節)神様はこれ以上ユダに容赦しないことをもう一度確言なさいます。(7節)


*神様はどのような方ですか?
神様は私たちに危機が訪れても祈りを何回かするだけで利用できる単純な方ではありません。
返って神様は私たちの心を見て、ためし、行為するそのまま与える方です。(エレミヤ17:19)
これが異邦の神々とは違った唯一でおられる神様との根本的な違いです。


*教訓*
セデギヤは“自分の安易のために神様を利用すること”を当たり前のようとし、エレミヤに祈りを要請します。
今日、多くの人が自分が欲すとするものを得るために“神様の御意思”と言う言葉を利用したり、
周囲の人々に自分の欲望のために祈りを要請したりもします。
必要なもののために祈りをすることは可能です。
しかし私たちの人生自体が神様のために存在するという事実が前提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単純によくなりたいと神様を利用することは、異邦の神々を対する態度と変わりようがありません。
私たちの祈りは“神様のためにある自分”ですか?それとも“自分のためにある民様”です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