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다시올립니다.

2010.06.13 14:03

류연정집사 조회 수:3045 추천:85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기억에 없던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말 그대로 교회를 다닌 것이지 믿음이 있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성탄절 맛있는 것과 선물을 줬던 기억과 뜻도 모르면서 성경구절을 외어 다 외운 사람에게는 선물을 줬던 기억. 그저 엄마가 가자고 하니까 따라나섰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불교인 아버지가 반대가 너무 심해 엄마와 우리들은 교회 가는 걸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어렸을 적 그 기억들도 엄마가 아버지 몰래 저희들을 데리고 갔던 몇 번 안 되는 날 중의 기억일 것 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믿기 시작한 것은 일본에 오면서부터 입니다.
가정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늘 뭔가에 쫒기는 삶이였고,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의 나날 이였습니다.
뭐든 제 힘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현실에 제 어께는 늘 무겁고 버거웠습니다.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끝에 대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늦은 나이에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대학생활도 순조로웠고 공부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대학만 가면 뭔가 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졸업을 했고 공부를 더 하자는 결정에 전공을 살려 어학연수를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은 너무나 설레고 뿌듯하며 제가 대견 했습니다.
돈도 빽도 없는 저는 저 스스로 대단한 아이라며 잘하고 있다고 나를 격려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학교 가서 수업하고 알바가고 쉬는 시간은 5분이라도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난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건지 갑자기 삶에 무게가 느껴지면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아무결정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힘으로 뭔가를 찾아보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행복도, 만족도, 기쁨도 아무것도 찾지를 못했습니다.
머릿속이 하예지면서 그저 교회를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룸메이트 언니가 교회를 다녔고 함께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간 교회는 나에게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한동안은 그저 하나님에게 원망의 기도만 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주님은 도대체 어디계신 거냐고, 왜 나에게는 이런 시련만 주시냐고....
그렇게 울부짖고나니 마음에 평온이 오며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셨습니다.
지금은 말로 다 표현 못하는 평온한 마음 이였습니다. 희망을 주셨고 기쁨을 주셨습니다.
참 행복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모든 짐을 하나님께 다 내려놓고 주님이 이끄시는 데로 살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그렇게 버겁던 세상이 갑자기 희망으로 가득 했습니다.
절실했던 만큼 주님은 저에게 가까이 계셨습니다. 가까이서 저와 함께 울고 계셨습니다.
그럴 적마다 주님께서 저를 보호하시고 있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점점 더 주님께 모든 걸 의지하면서 기도가 길어지고 기도의 응답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첫사랑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전 큰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일본에 남아야 하는 건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 모든 조건으로 봐서 저는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벌어놓았던 유학자금도 바닦이 나고 상상했던 유학생활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더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은 생각지도 않은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한국에 돌아온지 2주만에 신랑이 따라 들어왔고 신랑의 청대로 부모님에게 인사를 들인다는게 결혼날짜까지 잡히고 말았습니다. 얼떨결에 한국에 들어온지 두달만에 결혼을 하고 전 다시 일본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주님이 세우신 계획임을 확신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해도 안되는 현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랑 위에 형이 미혼이였고, 전 부모님께 사귀는 상대가 있다고 이야기도 안한상태였고, 결혼할 비용도 없었으며, 양가 부모가 승낙할만한 상대인지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둘의 계획도 2년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 생각과는 다르게 모든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뭔가에 홀린듯 시간은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기회를 주셨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의 계획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막 주님을 알아가려고 하는 그 시점에서 주님이 저를 놓았다면 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저를 불러주셨고 이곳이 아니면 주님을 절실히 믿지 못함을 알기에 절 다시 이 일본땅에 데려다 놓은신 것을 이제는 압니다.
이곳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결혼하기 전 제 믿음은 아이였습니다. 원망하며 울며 때쓰며 보채는 아이같은 믿음이였습니다. 결혼 뒤 전 신랑과 동등한 믿음의 크기가 되기 위해 무지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에서 벗어난 어린이정도로 자랐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이 동경한인장로교회로 보내신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 믿음이 성숙하기를 바라십니다. 제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서두르시지 않았습니다.
한단계 한단계 저에게 맞는 교회를 보내주시며 그곳에서 저에게 맞는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이번 또한 제가 해야만 했던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저는 못합니다. 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1학기가 끝나면 좀 쉬었다 해야지, 2학기에 그만둘까 셀리더는 되야하는데 ….”
“어 이제 한학기 밖에 안남았는데 그만두기도 그렇고 하는 김에 다 해야지 “
시험이 들때마다 내게 그만두라는 사단의 생각을 뿌리치느라 바쁘고 힘든 시간들이였습니다.
수레바퀴삶을 잘 살지 못했을때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다 붙이며 “이제는 힘들어서 진짜 못하겠습니다. 주님 저 좀 그만두게해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해야만 한다고 다독이실때도 있었으며, 내 등을 힘껏 미실때도 있으셨으며 다구칠때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해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대학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있을때마다 마음을 다 잡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시 임하곤 하면서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하나 해내서 기쁜 것 보다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긴 여정을 잘 참고 이겨냈다는 것에 전 너무나 기쁩니다.
또한 제 졸업을 위해 뒷바라지 해준 우리남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남편의 내조가 없었다면 전 졸업이 아니라 시작도 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동반자를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남편도 언젠가는 저와 같이 셀 리더 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내 믿음이 성장하며 내 삶의 길을 알려주시는 제자대학을 우리성도들께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분명 편한 제자대학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난뒤 축복은 함께옵니다.
고난을 잘 참고 이겨내면 나의 영이 성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주실거라 확신합니다.
나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 변화로 인해 다른 주위를 변화시킬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우뚝서고 싶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하며 나에게 끼워두었던 틀을 벗어던지고 자유한 몸으로 하나님을 더욱더 찾는 제자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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