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는  모든이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이글을 읽기전... 먼저 저번에 올려드린 글을 먼저 다 읽고난 후에 이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911테러이후 하나님은 저에게 수많은 재앙과 환란들을 환상과 꿈으로 알려주셨고 그 일들이 그대로 이루지는것을

보면서... 이후로 환상과 꿈으로 보여주신 수 많은 환란과 재앙들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아이티 지진을 통하여 울부 짖을때에 하나님은 저에게 세밀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글을 남기는 것도... 너무도 조심스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2013년 11월 24일 어제 새벽...

하나님은 저에게 또하나의 환상과 꿈을 보여주셨는데... (받을만한 자는 받을 지어다!)

한 학교가 보이고 한 교실이 보이는데 그 교실안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여학생과 남학생이 보이는데 그들은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어느정도 나이드신분들도 보였습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담임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들어오는데 그분이 남학생들을 모두 불러 세우고

놀랍게도 그 남학생들에게서 모든 정자(아기씨)를 거두었고 그 정자(아기씨)를 준비된 케비넷에 모두

넣고 잠가 버렸습니다.

 

또다시 다른 환상과 꿈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길거리 바닥에서 앉아 자신의 이마를  땅에 부딪히며 통곡을

하면서 울고 있었고 두사람이 그들을 지켜보며 서있었는데 한통의 우편물이 날아와 한사람에게 배달이 되었고

그 우편물을 보았는데 네글자가 보이는데 자세히는 볼수 없었으나 누구도 뜯어볼수 없고 봉인되어 기간이 찰때까지 볼수 없게 해 두었기에...

 

"하나님께 이 두가지 환상과 꿈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이해할수 없나이다" 하자!

한순간에 이 환상과 꿈이 해석이 되어 나의 뇌리에 깨달아 알아 졌는데...

 

학교는 세상을 말하고 학교수업이 끝난것은 세상의 시간이 다 된것이고 학생들은 세상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정자(아기씨)를 빼앗아 케비넷에 보관한것은 더이상 세상에 인간의 탄생은 다시는  없고

새로 태어나는 어떠한 창조도 없는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고 이런 형상이 벌어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 하기 위한 징조 즉,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은 죽음 때문에 울고 있는것이며 서있는  두사람은 이들을 대려가기 위해

서있던 죽음의 사자들이었으며 배달된 봉인된 우편물은 누구도 볼수는 없지만 그를 대려가기 위한 마지막 통지서 

이며 이 우편물이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모두 배달이 될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이환상과 꿈을 보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주일을 보내고 받을만한 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사건이 코앞에 와 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다시금  자신이 예비되고 준비된 주님의 합당한 자인가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89년 4월 4일 ... 저녁

이날은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날입니다. 즉 거듭난 날입니다. 영생을 얻은 날입니다!

이날...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너무 기뻐 눈물로 기도할때 두가지 환상을 하나님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명문 대학 정문에서 뛰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그 명문대학에 합격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들을 지켜 보는 저에게 하나님은 그들은 세상 대학에 합격되어 기뻐하지만

너는 나의 나라에 합격 되었다! 는 환상과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수 없이 넓은 들판과 산들을 보았는데... 그곳에 갑자기 눈이 내리더니

온 세상이 눈으로 덮히고 새 하얗게 되었고... 그 누구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저에게 이와 같이 너의 죄가 흰눈같이 다 사해졌느니라! 는 소식 이었습니다.

 

당신도 이 기쁜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 다 같이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게 하시고 눈을 열어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때가 급하여 소식을 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하나님! 저희가 불의한자에 자리에 있었습니까? 오늘 이 말씀으로 의로운 자가 되게 하시며,

더러운 자에서 거룩한 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 이순간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게 하옵소서.

주여! 이시간  어떠한 모습이라도 악이 틈타 방해 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시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의지로 나아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에 이끌려 나아가게 하소서.

성령님이시여 우리의 강팍한 마음을 열어 우리를 도와 주소서! 깨닫게 하여 주소서!

어느 때이든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가는 길에 동행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안과 밖으로 감싸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오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비? 준비? -

마지막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알고계십니다. 단지 우리는 어느 때이든지 예비가 된 자들, 준비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2012를 보면 지구의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재난을 당하는 영화입니다. 엄청난 지진과 해일(쓰나미)을 지질학자들의 예견으로 인해 중국에 피난처를 만들고 세계 인류 중 일부만 살아남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사람이 만든 장소로 피한다 해도 피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6 : 14~17]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 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 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우리의 힘으로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늘에 우주 정거장을 만들고 우주 기지를 만들어 대피하는 계획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자들도 피할 수 없다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옵 1 :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방법으로 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뜻을 찾아야 합니다.

 

- 멸망의 사건들을 통한 교훈 -

예수님의 예언은 앞으로 있을 마지막의 환란(멸망)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미 있었던 멸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멸망들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해야 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피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1. 노아의 방주-

성경에는 멸망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은 노아의 방주 사건입니다.

창세기 6장~9장에서 그 사건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창 6 :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말씀으로 그 시대의 죄악 된 상황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은 물의 심판을 하십니다.


-2.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 속에 롯이 선택한 땅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성 또한 타락하고 죄악이 가득한 도시었습니다. 그곳을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려하자 아브라함은 의인 50명, 45명, 30명, 20명, 10명이 있어도 멸망하시겠냐고 하나님께 여러 번 묻습니다. 결국 의인 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합니다.

[창 19 :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이 멸망하는 도시에는 죄악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 3. 요나와 니느웨-

요나서 1장 2절을 보면 니느웨도 악으로 가득한 도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 1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니느웨성은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멸망을 그 성에 선포 했을 때 3장 5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며 강력하게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회개합니다. 이러한 결과로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 공통점 -

멸망의 원인은 죄악이었고 죄악을 회개하지 않음은 멸망에 이르는 길이었고 철저하게 회개한 경우에는 그 뜻을 돌이키셔서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연관된 사항입니다. 마지막에 있을 멸망, 이 세상 마지막의 환란도 죄악과 타락으로 인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도 엄청난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매일 살인과 성범죄 약탈과 사기, 낙태, 폭력, 비리, 등 무수한 죄들이 뉴스에 보도 됩니다. 바로 현대의 이세상도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의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 당신의 죄악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신앙생활을 해 왔다면... 당신도 이 멸망의 사건속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멸망에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계획 -

인간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알아 가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가를 느끼게 됩니다. 이해가 쉽도록 복잡하게 말씀 드리지 않고 주제와 함께 오직 원리와 목적에 대해서만 설명 드리겠습니다.

 

- 예수님 -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든 이름에는 뜻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이름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평생 외쳐왔지만 그 뜻을 물으면 당황해 하며 “뭐였지?”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마태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구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가장 먼저 외쳤던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왜 이렇게 외쳤을까요? 이렇게 외침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인류를 죄에서 구하실 목적으로 예수님을 보내심이요 죄에서 구하심이란 먼저 백성 스스로가 죄를 인정하고 자백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지만 모든 백성이 만약 스스로가 “죄인이 아니다!” 또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의미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 회개의 열매 -

사람들은 세례를 주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위해 요단강가로 나아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3장 7절 찾아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독설을 뿜어 버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례를 받으러온 그들에게……. 그 이유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성경에 능통한 자들이었으며 율법적으로 생활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8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당부하며 9절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 말씀하십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무슨 나무입니까? 8절에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라고 말 했듯이 좋은 열매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해석을 해본다면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마다 불에 던지 운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도 이러한 해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장경동 목사님은 수시로 말씀하십니다. “교회에 회개가 점점 사라지고 쭉정이 투성이다”라고요. 교회에서 회개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그럼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5절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세례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바로 자기들의 죄를 자복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복했기 때문에 세례받기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 예수님 가라사대 -

마태복음 4장부터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17절“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하시면서 예수님의 첫 외침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치셨을까요? 세례요한과 똑 같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백성을 죄에서 구할 목적이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도 “구원자”요 먼저 와서 광야에서 외친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요. 마찬가지로 예수님 스스로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 -

예수님이 12제자들을 부르시고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귀신을 제어 하는 권세를 주시고 전파하게 하십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나가서 외칩니다. [막 6 :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에 나가서 전파할 때 먼저 능력을 행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전파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이었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그렇게 외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 속에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고 그 집 앞에 거지인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둘 모두가 죽었습니다. 부자가 죽어 음부에서 고통 중에서 눈을 들어보니 자기 집 앞에 있던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건너 갈수도 건너 올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부자는 나사로를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보내어 형제 다섯에게 증거 하여 저희가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부자가 말 합니다. 30절 “가로되 그렇지 아니 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라고 말하면서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는 부자는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이 “회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개는 지옥을 가느냐. 안 가느냐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회개치 아니하는 자-

[롬 2 :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롬 2 :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

*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치 아니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반성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회개의 필요성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필수 사항인 것입니다.

 

- 살인 -

마태복음 5장 21절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라 살인하기까지의 모든 동기조차도 살인이라는 겁니다. 살인자가 아무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처음에 어떠한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 미움이 커지면 화가 납니다. 더욱 미워지면 욕하게 됩니다. 그 미움이 계속해서 진행 되면 살인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미움이 실천이 되면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살인의 동기가 이러하듯이 예수님은 이러한 동기들조차도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하는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졌던 미움도, 화도, 욕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 간음 하는 자 -

마태복음 5장 27절에는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간음한 자가 아무이유도 없이 동기도 없이 간음을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습니다. 이것부터가 첫 단추입니다. 지속적으로 이성을 생각하고 음욕을 품습니다. 그리고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천을 했을 때 간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음부터 시작된 쳐다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이미 죄 라는 것입니다.

 

- 송사 하는 자 -

마태복음 5장 25절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라는 말씀은 예를 들어 음주 운전 중에 차사고가 나서 피해자와 법원을 가야 하는데 법원까지 가서 심판을 받고 재판을 받아 감옥까지 가지 말고 그 가는 길에서 서로 합의를 하여 받을 고난을 받지 말라는 뜻이며 다시 해석해서 말하면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운명이지만 인생의 길에 있을 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세상 끝 날 심판자 앞에 가서 재판을 받고 지옥에 가지 말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호리”라는 말은 가장 작은 단위를 말합니다. 즉 먼지만큼의 죄라도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그 지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전능하신 분입니다. 결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죄라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에서 저지른 모든 죄가 있다면 해결해야 합니다.

 

- 하와의 죄 -

창세기에서 인류최초의 범죄가 일어납니다. 처음 하와의 범죄는 선악과를 쳐다보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것부터가 죄의 본성이 나타 난 것입니다. 쳐다봤다는 것은 죄에 대해 관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인자, 간음자 뿐만 아니라 죄를 생각하고 품은 것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본즉 먹음직도 하고” 아직 먹지 않았지만 쳐다봄으로 인해 다음에 먹음직스럽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죄는 이렇게 시작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보면 볼수록 죄는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습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결국 행동으로 옮겨져 함께한 사람까지 범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란 “먹어야”만 죄가 아니라 따 먹기까지의 모든 동기가 죄라는 것입니다.

 

- 죄인을 부르심-

마태복음 9장 12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건강한자가 병원에 가서 치료 받는 것 봤습니까? 의원도 병든 자에게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이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목적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 속에 나는 죄인임을 모르고 있었고 진정한 자백과 회개가 없는 자는 성경 속에 많은 비유와 사건처럼 “독사의 자식들아” 하며 세례를 주지도 않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는 강도처럼 낙원에 들어가지 못하며,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며,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게으른 종처럼 가지고 있던 달란트마저 빼앗기고 어두운 곳에 쫓겨나 이를 갈며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 죄를 발견 하라 -

마태복음 5장 29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절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널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스스로 저지른 죄로 인해 그 죄가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은 정말 찍어내고 빼 내라는 뜻이 아니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죄를 발견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발견했다면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 태평양 -

제 간증을 보시면 20년 전 저는 “죄” 문제로 태평양 한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죄를 발견 했던지 사방을 둘러 봐도 오직 내 죄만 가득 했습니다. 그곳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발목 정도만 있다고 생각하며 첨벙거리며 세상에 살아갑니다. 만약 그를 예수님이 건져 주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아~ 시원하고 좋은데 왜 건지는 거요?”할 것입니다. 그 정도의 죄는 죄라고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슴 정도의 물에서 수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도 예수님이 건져 주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도 “아~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왜 건지는 거요?”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물이 자신의 키를 넘기고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자는 다릅니다. 자신이 거기에 빠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바로 “누구든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 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한 물이라고 한다면 그 물속에서 빠져 죽어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은 무척 적습니다.  

그 깨달음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과 얼마나 타협하고 살아왔는지 발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발견이... 그저 살만한 물가에서살았다고 판단하시면... 당신과 예수님의 관계는 그냥 아는것으로 그치는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 물속에 빠져 죽어가는 자신을 발견한 자는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해 버리는 겁니다.

 

- 회개의 비유 -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3장5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시면서 회개에 대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세례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던 것처럼 여기서 실과는 “회개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삼년을 기다려 왔는데도 실과가 없었습니다. 찍어 버리려하자 과원지기가 금년에 거름을 주고 관리를 했음에도 실과가 없으면 찍어 버리소서.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탕자가 자신의 잘못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일어나 집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듯

당신 또한 예수님을 알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며 일어나 하나님께로 향하셔야 합니다.
 

- 기도 -

기도하기를 간구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에 세리가 기도한 것 같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기도를 하시고 다음을 계속 보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죄인 됨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눈이 가리워지고, 마음이 강퍅하여 나의 죄 됨을 발견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였나이다.

아버지 세상에 치우쳐 살아온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무릎 꿇게 하소서 회개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당신 홀로 무릅꿇고 기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당신에게 있었던 사소한 죄들을 기억하시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 인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계획 -

이제 성경의 전체 흐름 속에 우리와 하나님 관계 속에서 무엇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1. 에덴동산 -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우리를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 2. 돌단 시대-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 아벨과 가인이 돌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 제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 3. 성막 시대 -

그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성막 건축을 알려주십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어지고 광야에서 성막도 함께 이동하였습니다. 이 성막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죄를 사함받기위해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용서를 받았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 4. 성전 시대 -

가나안에 입성하고 이스라엘이 솔로몬왕 때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광야생활속의 성막이 아닌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 5. 예수님 시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신 후 부활 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사역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 6. 교회 시대 -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 시대가 시작이 됩니다.


- 돌아 봐야 할 문제 -

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흘러온 모든 시대를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1.에덴동산에서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를 범한 후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움에 있자 하나님께서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즉 태초로 피 흘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죄를 덮으셨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돌단의 시대에서 아벨이 어린양을 제사를 받으신 것도 어린양의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다가 하나님이 그를 대신하여 준비하신 수양도 피 흘림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졌습니다.


3. 성막시대에서도 번제단에 제물을 드릴 때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자는 소나 양으로 그 머리에 안수를 했으며 이 안수는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짐승이 죽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머리와 기름을 베어냈으며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었습니다.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피를 전부 단 밑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불로 태웠습니다.

 

4. 성전시대에도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1장 13절을 보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말씀하시면서 먼저 헛된 제물의 헛된 피 흘림 1장 11절에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시면서 16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라고 말씀하시면서 진실함 없이 가져오는 제물에 대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5.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 그러한 성전에 가져오는 헛된 제물과 스스로 자신의 죄를 생각지 아니하는 피 흘림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히 9 :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롬 3 :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계획은 바로 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피로, 피 흘림으로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영원한 속죄의 피 흘림으로 사용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바로 나의 죄를 위한 제물 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제물을 바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어린양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1 :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세상 죄에 우리의 죄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계획 이었습니다

[요 3 : 16]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제사에 제물로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행 4 :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 이름의 뜻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 우리의 구원자 인 것입니다.

[마 20 :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그렇게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눅 2 : 10 ]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주는 바로 구원하실 주님입니다-

[요 5 :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할 때 영생을 얻습니다. -

[요 1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바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


6. 그렇게 예수님은 죽임 당하시고 부활 하시어 다시 오실 예수님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 시대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일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예수님의 피로 사신 신부의 모습입니다.


 

- 제가 깨달았던 구절 -

제가 20년 전 그렇게 죄의 바다에 빠져 살려달라고 주님을 붙잡고 매일 눈물로 기도할 때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를 보면서 내가 탕자였고 허랑방탕하게 살아온 죄인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며 한탄을 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18절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렇게 죄인임을 회개합니다. 이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하나님은 기다리셨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더럽고 추악한 모습으로 돌아온 절 상거가 먼데 미리 나오셔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희생하면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믿음-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죄인 됨을 알았으며, 예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를 멸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이 모든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고 살아가면 됩니다.

[롬 10 :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 :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기독교에서 믿음! 믿음! 믿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 속에서 오신 예수님이 우리(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진정으로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기로 지금 작정하셨다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당신도 구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받아들이시고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피할수 있는 길의 첫걸음이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복하고 예수님께 나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시면 됩니다. 이 얼마나 쉽습니다.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복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시면 되는 겁니다.

얼마나 쉽고 간단 하며 평등합니까? 믿기만 하면 피할수 있습니다.  영화 2012처럼 부자나 권력자나 엘리트

들만이 선택되어  피한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믿기만 하면 구원할 계획으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것 입니다. 그러니 믿는자에게는 하늘의 축복이

믿지 않는자에게 저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를 멸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스스로 대답해 보십시요!

이제 믿으십니까? 당신의 죄를 감당하시고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지금 믿는 이순간!!! 당신은 이제 다가올 재앙과 환란에서 벗어나게 된것입니다.

어떻게요? '휴거' 즉  믿는 당신을 하늘로 올리우시고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영화 2012 처럼 돈이 있어야  준비된 배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 오직  '믿음' 이라는 것으로요.

 

이제 당신도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나를 대속하시고 죽으심을 인정하십니까?

큰소리로 대답해 보십시요!  인정하십니까? 

인정하셨다면!  당신도 구원을 이룬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잘못 이해하고 계시는데...

수많은 간증과 잘못된 복음으로 인해  마치  구원이란  전기가 흐르는듯한 느낌을 받거나

환상이 보이거나  불 같은 뜨거움을 느껴야 하며  눈물을 흘려야만 구원을 얻은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한 성령의 역활을 잘못이해 하고 계시는데...   뭔가 특별한 경험이 있을것이라고 믿는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그런것이 절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특별한 경우는 있지만...

누가복음에  구원 받은 강도를 보십시요.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구원받은 강도를 보십시요. 그는 세상의 나쁜짓이란 나쁜짓을 다 한 파렴치한 강도입니다.

그는 십자가라는 극형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지금 그가 느끼는 것은 쇠못으로 박힌 고통 뿐입니다. 그 어떠한 특별한 느낌이나  뜨거운 눈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 (죄)를 알고 있으며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회개합니다.

똑같은 강도이며 똑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는 비방하고 하나는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당신도 지금까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저 아는것으로만

살아왔다면 비방한 강도와 같습니다.

당신도 지금까지 행한일로 상당한 보응을 받을것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를 살려달라고 인정해야 하는것.

그것이 성령님의 인도이며 역활입니다. 

특별한 경험이 없다해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어 지지 않는다면 그 또한 큰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태초부터

준비하시고 계획하셨으며 오래 참으셨습니다. 또한 자녀된 당신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가축을 잡아 그 피로 사함을 인정해 주었으나 이방민족까지 자녀삼으시고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까지

아낌없이 내주어 그의 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단번에 사해 주신것입니다.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면  비방한 강도와 같을뿐입니다.

알고 있다면 믿으시고  믿음이 연약하고 작다고 생각된다면  그저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큰소리로 함께 기도를 따라하세요!- (꼭! 소리내어 읽으세요)

 

"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너무나 많은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그런 불쌍한 저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대속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이순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인정합니다.

  날위해 십자가에 대속하여 달리신 예수님 감사하며 이순간 믿고 인정합니다.

  저를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벌레만도 못한 절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 이제 인정하셨으면...  당신은 거듭난 것이며 구원을 이룬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입니다. 세상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계획입니다.

그리고 다시 의심하지 마십시요.  의심도 마귀입니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것이 마귀의 역활이듯

자녀된 성도들에게 의심을 주는것이 사탄의 주된 업무입니다.

 

당신이 지금 스스로 믿고 인정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했다면 

당신은 이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입니다.

 

-당신의 존재-

하나님의 뜻에 따라 회개하며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어 의에 이른 우리는 어떠한 존재일까요? 하나님은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요 1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말씀하시면서 “내안에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5 :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며 결코 떠나서는 안 됩니다.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 기도하며 신부가 된 교회에서 뜻을 함께한 자들과 함께 봉사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 베드로의 당부-

[벧후 3 : 7~14]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렇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죄에서 벗어나 평강가운데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 착각해서는 안 되는 죄 -

그럼 앞으로 살아가면서 격게 되는 많은 죄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죄에 대해서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회개하면 무엇이든지 다 용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닌데 오랜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죄를 저지르고는 주일날 교회가서 회개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매주 반복 되다 보니 “이정도의 죄는 괜찮아 또 주일날 교회가서 회개하면 되지!”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죄에 대하여 만성이 되어 무감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귀가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무서운 병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기독교인들의 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빨래 가방을 들고 2층 난간으로 올라갑니다. 믿지 않는 분들은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오르는 모습은 바로 기독교인들 자신이 죄를 회개하기위해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올라가 보니 이미 널어논 빨래들이 가득했고 더 이상 널 곳이 없었습니다. 즉, 성도들이 매주 마다 교회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만 그의 죄들은 포화 상태였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날씨 였는데 화창한 날씨가 아니었고 장마 비처럼 계속되는 빗속에 무거운 빨래들이 마치 노숙자의 옷처럼 널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빨래를 가져온 가방을 보니 그 속엔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더러움의 오물과 배설물들이 보였고 기생충들이 바글 바글 기어 다녔습니다. 성도들은 그런 빨래들을 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빨래를 널었던 사람의 손을 보니 이미 오물과 배설물이 묻어있었고 기생충들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잠시 뒤 오른손을 갈아 먹어 버렸고 시간이 지나자 그의 한쪽 눈까지 파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본 성도들의 죄였습니다. 잠시 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변화" 없고 "경건"의 삶도 없고 "의"롭지도 못한 체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고 그 죄를 교회에서 회개하면 다 용서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예수님의 피로서 죄 사함 받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라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변화”된 사람으로 결단하며 살아야 하며 베드로의 당부처럼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는 말씀처럼 경건과 의와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 기도 생활 -

신앙생활에서 기도는 무척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대화의 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이나 이기주의적 기도는 응답이 늦으시거나 들어주시지 않으십니다. 저 또한 많은 기도 생활 가운데에서 무수한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고 보았습니다. 저는 세상적인 기도는 거의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기도 자체가 죄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칼을 달라고 한다면 주겠습니까? 이러하듯 자신이 잘못 요구하는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엔 칼과 뱀과 같아서 응답을 안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막 9 : 28,29]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처럼 기도는 엄청난 기적과 일을 만들어 냅니다. 성경에 모든 기적과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사실을 보면 모두가 기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당신이 매일 열심히 기도생활을 한다면 당신도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의 일들을 삶속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함께 성경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시고 또한 열심히 찬송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 주의해야 할 신앙관 -

주의해야할 신앙관 중에는 잘못 이해한 “종말론”입니다. 저도 세상멸망의 징조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현대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예수님 시대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고 과학적인 근거와 눈에 보이는 사실을 보여 주었을 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믿게 되기 때문에 이처럼 설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보고 삽니다. 이점을 악용하여 이단은 각자의 삶을 포기하게 하고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며 맹목적인 헌물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대학은 가서 뭐하며, 사업은 해서 뭐해? 라는 식의 신앙관으로 흐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두 사람이 밭에 있을 때, 두 여인이 매를 갈고 있을 때, 두 남자가 밤에 자고 있을 때”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대려감을 당한다고 하셨듯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있는 가족, 벗, 이웃, 동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아름다운 삶을 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말만을 강조 하여 고난과 핍박을 일부러 받아야 하는 식의 신앙관도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정을 불화로 만들면서까지 “나는 십자가를 지고 있다”라고 하는 개인주의적인 신앙관도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라”라고도 하셨고 [마 10 :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때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핍박과 고난도 감수해야 겠지만 뱀과 같이 지혜롭게 하여 믿지 않는 주위에 있는 분들과 전투적인 방식의 신앙관이 아닌 포용하고 이해하며 그를 주께 인도하는 희생과 인내와 사랑의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교회에는 많은 목사님들이 계시고 목사님마다 사역의 방향이 조금씩 다릅니다. 선교에 목적을 두기도 하고, 제자양육의 목적을 두기도 하며, 교회부흥의 목적을 두기도 하며, 노숙자나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목적을 두기도 합니다. 목적을 어디에 두었던 간에 그 교회에서 함께 뜻을 같이하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순종하며 봉사하며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때론 교회안에도 아직 믿음이 없는 분도 있고 확신이 없는 분도 있고 심지어 예수님도 하나님도 모르고 “내가 죽으면 장사를 잘 치루어 줄 것 같아서” 교회 나오신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표적만을 보고 따르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심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런 분들이 계심을 빨리 인식하여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글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구원을 이루시기를 기원하고 소망합니다!

또한 이미 구원받고 거듭난 분들은 다시금 회복의 기회가 되셨기를 기원하고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를 기원하며 다시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글을 읽고도 구원의 확신이 없고, 거듭남이 무엇인지 모르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목사님과 면담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