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24시간 수많은 대화를 하면서 많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중에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있습니까? 무슨 단어를 접할 때 여러분은 가슴이 설레여지십니까? 청년,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여지는 단어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황금기를 지칭하는 시기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교회는 5월 넷째주일을 청년주일로 정하고 지키고 있는데, 특별히 많은 청년들이 한번더 청년기에 대하여 되돌아 생각해보고 청년기를 아름다운 도전으로 채우길 원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청년에 대한 성경은, 육체의 젊음이 넘침(욥기20장11절), 곤고함을 모름(전도서12장1절), 마음에 소원이 많음(전도서 11장9절) 그리고 새벽이슬과 같음(시편110장3절)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적인 정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어떤 이의 능력을 평가할 때 “저 사람은 다 좋은데 나이가 너무 어리다”며 평가절하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다소 젊은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적어도 목회를 하려면 나이 40은 넘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습니다. 곧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능력을 평가함에 있어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이러한 나이에 대한 맹신 경향은 두드러집니다. 나이 순대로 일에 대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의 직분을 부여함에 있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우선시합니다. 그래서인지 교회 안의 젊은이는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분위기 안에서 위축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성경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큰 일을 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였습니다. 기독교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18세기의 유명한 부흥사 조지 휘필드는 21세에 노방전도로 명서을 날렸고, 우리가 잘 아는 스펄젼은 17세의 나이에 복음전파를 시작하여 27세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 교회를 건립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D.L.무디는 20세에 Y.M.C.A.의 간사를 역임하였고 유명한 탐험가이자 선교자인 리빙스턴은 23세에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으며 장로교의 선구자 존 칼빈은 27세에 유명한 기독교강요를 썼습니다. 마틴 루터는 27세에 95개조항에 이르는 반박문을 빗텐베르크 정문에 내걸음으로써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33세이라는 젊은 나이에 온전한 복음을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40세를 넘은 분들은 절망할 수 있겠지요. 본문을 잘 보십시오. 젊음이라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3번 반복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몸’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의 언급에 그치고 있습니다. 즉, 몸은 청년이 아니더라도 마음에는 청년과 같은 젊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젊음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기운찰 수 있습니다만, 마음을 젊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청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청년의 날인 오늘 해야만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1. 기뻐하라(9절)
마음에 기뻐하라고 합니다. 청년의 날은 아무런 이유없이 조건없이 기쁨이 가득해야 합니다. 저의 청년시절의 별명은 싱글콘이었습니다. 이는 마침 당시 잘 팔리던 아이스크림의 제품명이었는데, 날마다 그저 싱글싱글 웃고 다녔던 저에게 딱 맞는 별명으로 붙여진 것입니다. 청년의 때는, 이유없이 웃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좋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심각한 얼굴의 젊은이가 많이 보입니다. 성경은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근심으로 얼굴을 어둡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얼짱이 있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임정수 형제입니다. 단한번도 찡그린 표정의 그 형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여건과 무관하게 우러나오는 그 웃음은 그의 재산이고 보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을 찍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숨고 가리는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시기에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 한다면 언제 자신을 드러낼 것입니까? 저의 집사람이 요즘 스스로의 사진을 보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쉽니다. 눈가의 주름이며 나이든 모습에 한탄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사진을 찍을 때는 한껏 웃어보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기쁨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중의 앞에 서길 두려워 하고 회피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기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되찾고 자신의 웃음을 제1의 보물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하루하루가 시작하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싱그럽고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소망하라(9절)
큰 뜻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악으로 내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는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에 큰 소망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을 엄습하는 악을 멀리 내쫒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밀려드는 악에 쉽게 동화되는 것일까요? 자신의 중심에서 소망하는 큰 꿈과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하되 큰 것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가장 큰 꿈을 품어야 합니다. 제가 힘든 일본 선교 중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이 큰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제 곁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젊은 여러분들이 제게는 버거운 짐이지만, 여러분은 제 힘이 다할 때가 되면 저에게 상상치 못할 놀라운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꿈과 소망이 더 크고 더 거창하게 펼쳐져야 할 것입니다. 그 밑바탕은 항상 우리가 꿈꾸는 바와 같이 복음으로 이룰 세계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엄청난 일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그의 실현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소망으로 오늘을 준비하는, 내일을 준비하는 귀하고 복된 청년의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3. 행동하라(9절)
눈이 보는데로 좇아 행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행동해야 합니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마음의 감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 내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내가 느끼는 기쁨과 감동은 무가치한 것이며 한낱 자기위안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소망이 지금 이순간 나를 위로하는 하나의 수단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행동을 통하여 그것이 내 미래에 나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왜 성경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는 청년의 때가 빨리 지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의 때,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이 황금의 시기는 지나가버립니다. 생각만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어나서 움직이는 자만이 미래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큰 소망이 정하여 졌다면 내 몸을 움직여 행동해야 합니다. 행동할 때에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행동으로써 다니엘과 같은, 디모데와 같은, 스데반과 같은 젊음의 신앙을 유지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수많은 대화를 하면서 많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중에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있습니까? 무슨 단어를 접할 때 여러분은 가슴이 설레여지십니까? 청년,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여지는 단어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황금기를 지칭하는 시기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교회는 5월 넷째주일을 청년주일로 정하고 지키고 있는데, 특별히 많은 청년들이 한번더 청년기에 대하여 되돌아 생각해보고 청년기를 아름다운 도전으로 채우길 원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청년에 대한 성경은, 육체의 젊음이 넘침(욥기20장11절), 곤고함을 모름(전도서12장1절), 마음에 소원이 많음(전도서 11장9절) 그리고 새벽이슬과 같음(시편110장3절)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적인 정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어떤 이의 능력을 평가할 때 “저 사람은 다 좋은데 나이가 너무 어리다”며 평가절하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다소 젊은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적어도 목회를 하려면 나이 40은 넘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습니다. 곧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능력을 평가함에 있어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이러한 나이에 대한 맹신 경향은 두드러집니다. 나이 순대로 일에 대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의 직분을 부여함에 있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우선시합니다. 그래서인지 교회 안의 젊은이는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분위기 안에서 위축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성경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큰 일을 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였습니다. 기독교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18세기의 유명한 부흥사 조지 휘필드는 21세에 노방전도로 명서을 날렸고, 우리가 잘 아는 스펄젼은 17세의 나이에 복음전파를 시작하여 27세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 교회를 건립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D.L.무디는 20세에 Y.M.C.A.의 간사를 역임하였고 유명한 탐험가이자 선교자인 리빙스턴은 23세에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으며 장로교의 선구자 존 칼빈은 27세에 유명한 기독교강요를 썼습니다. 마틴 루터는 27세에 95개조항에 이르는 반박문을 빗텐베르크 정문에 내걸음으로써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33세이라는 젊은 나이에 온전한 복음을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40세를 넘은 분들은 절망할 수 있겠지요. 본문을 잘 보십시오. 젊음이라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3번 반복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몸’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의 언급에 그치고 있습니다. 즉, 몸은 청년이 아니더라도 마음에는 청년과 같은 젊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젊음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기운찰 수 있습니다만, 마음을 젊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청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청년의 날인 오늘 해야만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1. 기뻐하라(9절)
마음에 기뻐하라고 합니다. 청년의 날은 아무런 이유없이 조건없이 기쁨이 가득해야 합니다. 저의 청년시절의 별명은 싱글콘이었습니다. 이는 마침 당시 잘 팔리던 아이스크림의 제품명이었는데, 날마다 그저 싱글싱글 웃고 다녔던 저에게 딱 맞는 별명으로 붙여진 것입니다. 청년의 때는, 이유없이 웃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좋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심각한 얼굴의 젊은이가 많이 보입니다. 성경은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근심으로 얼굴을 어둡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얼짱이 있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임정수 형제입니다. 단한번도 찡그린 표정의 그 형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여건과 무관하게 우러나오는 그 웃음은 그의 재산이고 보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을 찍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숨고 가리는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시기에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 한다면 언제 자신을 드러낼 것입니까? 저의 집사람이 요즘 스스로의 사진을 보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쉽니다. 눈가의 주름이며 나이든 모습에 한탄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사진을 찍을 때는 한껏 웃어보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기쁨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중의 앞에 서길 두려워 하고 회피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기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되찾고 자신의 웃음을 제1의 보물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하루하루가 시작하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싱그럽고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소망하라(9절)
큰 뜻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악으로 내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는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에 큰 소망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을 엄습하는 악을 멀리 내쫒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밀려드는 악에 쉽게 동화되는 것일까요? 자신의 중심에서 소망하는 큰 꿈과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하되 큰 것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가장 큰 꿈을 품어야 합니다. 제가 힘든 일본 선교 중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이 큰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제 곁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젊은 여러분들이 제게는 버거운 짐이지만, 여러분은 제 힘이 다할 때가 되면 저에게 상상치 못할 놀라운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꿈과 소망이 더 크고 더 거창하게 펼쳐져야 할 것입니다. 그 밑바탕은 항상 우리가 꿈꾸는 바와 같이 복음으로 이룰 세계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엄청난 일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그의 실현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소망으로 오늘을 준비하는, 내일을 준비하는 귀하고 복된 청년의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3. 행동하라(9절)
눈이 보는데로 좇아 행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행동해야 합니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마음의 감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 내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내가 느끼는 기쁨과 감동은 무가치한 것이며 한낱 자기위안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소망이 지금 이순간 나를 위로하는 하나의 수단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행동을 통하여 그것이 내 미래에 나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왜 성경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는 청년의 때가 빨리 지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의 때,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이 황금의 시기는 지나가버립니다. 생각만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어나서 움직이는 자만이 미래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큰 소망이 정하여 졌다면 내 몸을 움직여 행동해야 합니다. 행동할 때에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행동으로써 다니엘과 같은, 디모데와 같은, 스데반과 같은 젊음의 신앙을 유지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