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는 일은 갚을 것이 없는 사람이든 갚을 것이 있는 사람이든 말에서부터 시작하여야 천 냥의 빚을 갚을 수도 있고 혹은 단 한 냥의 빚을 갚는다 하더라도 말에서부터 미안함과 고마움이 표현되어야한다. 이것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자신을 믿고 배려해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소의 도리다.
그런데 말에서 시작되지 않는 중요한 일이 있다. 오히려 말과는 상관없는 행동으로 하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가 쉽게 말로 하려는 용서이다.
그래서일까 주님은 용서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용서란 말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을 우리게 전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겠다고 돌아오는 탕아에게로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는 단 한마디의 용서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고서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용서를 배제한 아버지의 행동일 수 없다. 진정한 용서야 말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것임을 보이셨다.
잘 못한 이에게 말로써 용서를 운운하는 것은 그에게 잔 감이 아직은 남아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借金を返すことは返すことがない人でも返すことがある人でも言葉から始めて千両の借金を返すことも、あるいはただ一両の借金を返すしても言葉からすまないこととありがたさが表現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が大変だった状況の自分を信じて思いやってくれた人に対しての最小の道理だ。
ところが、言葉からではない重要なことがある。むしろ言葉とは関係ない行動でやることで、それが私たちが言葉で簡単に済まそうとする許しだ。
そうだからか主は許しを言っていない。許さないという強力な意志を見せていらっしゃったのではなくて、許しは言葉によるのではないことを私たちに伝えようとされたからだ。
お父さんに許しを求めようと帰って来る蕩児に駆け付けて、彼を抱きしめて許しという言葉を切り出さず止めどなく涙だけを流されるお父さんの姿は許しを排除したお父さんの行動ではない。真の許しこそ言葉ではなく行動でするのであることを見せてくださった。
誤った人に言葉で許しを云々するのは彼に残念な感情がまだ残っているという表現なはず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