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김용수(写真 ·文:金ヨンス)
한국브랜드의 가전이 세계를 호령하는 지금 시대에는 옛날 장작불이나 연탄불에 밥을 짓던 때에 있었던 누룽지는 식품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상품만 있을 뿐 일반가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더군다나 일본에 있는 우리로서는 누룽지 잊고 산지는 너무 오래다.
코로나 이후 왕래가 자유로워진 얼마 전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하는 지인으로부터 누룽지를 선물 받고 아침으로 끓여 먹는데...
너무 너무 맛이 있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의 생각났고 온라인 구매를 통하여 어머니에게도 똑같은 상품을 전달을 해드렸고 드셔보신 소감을 “어때요? 너무 맛있죠?”라며 다그치듯 물었다.
나는 오늘 아침도 끓은 누룽지로 별미의 아침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어린 시절 많은 끼니를 누룽지와 함께 물에 만듯한 끓인 밥과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먹었다. 이것은 당시의 일상이었고 장성한 지금 나에게는 그 때의 어릴 적 입맛이 현재의 별미로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가난했던 살림살이의 밥상이었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집이든 그 가난한 살림의 고충은 언제나 집안 살림살이를 꾸려야하는 어머니의 몫으로 고스라니 남는다.
남편과 세 자녀의 매 끼니를 책임져야 했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몫은 너무나 무거운 날마다의 짐이어야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가난을 몰랐던 유년을 지나셨던 서울 아씨의 삶을 사셨던 어머니로서는 당신이 시집오시기전에는 드셔보시지 않았던 음식을 매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물을 넣고 끓여 양을 늘린 밥이 나에게는 천진했던 어려서의 입맛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의 입맛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가 가장 힘들어 했었던 그 시절 눈믈의 입맛을 나의 별미의 입맛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별미는 무엇일까?
韓国ブランドの家電が世界に好まれている今の時代には、ほた火や練炭の火でご飯を炊いていた時にあったおこげは食品会社で作り出す商品があるだけで、一般家庭では自然に消えた。しかも、日本にいる私たちとしては、おこげを忘れて久しい。
コロナ以後、往来が自由になった先日、韓国から来た知人からおこげをプレゼントされ、朝食で作って食べたのですが、とてもおいしかった。
韓国にいる母親を思い出し、ネットで購入して母にも同じ商品を送って食べた感想を「どうですか?とてもおいしいでしょう。」と問い詰めるように尋ねた。
私は今朝もおこげに水を入れて沸騰させた芳ばしい味の朝食の時間を過ごした。そして物思いにふけっている。
幼い頃、おこげと少しだけのご飯にたくさんの水を入れて沸騰したご飯と干しカタクチイワシをコチュジャンにつけて食べていた。 これは当時の日常であり、大人になった今の私にはその時の幼い頃の食べ物が現在には珍味になっているのだ。
しかし、それがあまりにも貧しかった家の食卓だったということは大人になってようやく知った。
ところが、どこの家でも貧しい暮らしの苦痛は、いつも家事を営む母親の分として残る。
夫と3人の子供の毎食の責任を負っていた妻であり、母親としての役割はあまりにも重い日々の重荷だっただろう。 しかも、貧困を知らなかった幼年を過ぎたソウルのお嬢さんの人生を生きた母親としては、自分が嫁ぐ前には食べたことのない食べ物を毎日作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だ。
あんなにたくさんの水を入れて量を増やしたご飯が私には無邪気だった幼い頃の味だが、母にとっては生存のための窮余の策だったのだ。
しかし、私は、
母親が最も大変だったその時代の涙の食べ物を、私の珍味にしていたのだ。
私の愛する母にとって珍味は何だろ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