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김용수(写真 ·文:金ヨンス)
요한복음19:20-23절을 보면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저주의 십자가 아래에 있었습니다만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십자가 아래에 있는 우리는 은혜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은혜의 십자가 아래에 있는 우리 신앙의 삶이 저주의 십자가 아래에 있는 추악한 모습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소망할 곳은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의 주님이 계신 천국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있어야할 곳도 이 세상이 아닌 천국이구요. 우리의 재물이 있어야할 곳도 이 세상이 아닌 천국이어야 합니다. 내 삶의 의미 또한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 있어야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은혜의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로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당신이 달린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의 사실이 부담스러운 사람들과,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과, 자신의 몫만을 챙기는 사람들 각자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은혜의 십자가 아래에 있는 우리의 모습 또한 지켜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잘하나 못하나.. 감시자로서 예수님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되 당신을 닮은 마음과 당신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마치 사랑스러운 자녀들의 성장을 기뻐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바라보시지 않겠습니까?
ヨハネの福音書19:20-23節には、イエスがゴルゴダの十字架につけられるとき、3つのタイプの人が登場します。彼らは呪いの十字架の下にいました。しかし、イエスが死から復活された十字架の下にある私たちは恩恵の場にいる人々です。 このような恩恵の十字架の下にある私たちの信仰が呪いの十字架の下にある醜悪な姿であってはならないです。
私たちの人生はあまりにも早く過ぎ去ります。そのため、私たちの望むところは私たちの救い主がいる天国以外にはありません。 私たちの生命がいる所もこの世ではなく天国です。 私たちの財物があるところもこの世ではなく天国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の人生の意味もまたこの世ではなく天国に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してこそ、私たちは恩恵の十字架の下の人々として生きることになるのです。
十字架の上に付けられたイエスは、その十字架の下の人々を見つめていました。その人たちは事実が負担になった人々、自ら自分が正義な人、また自分の持分だけを手にする人々でした。まして今、恩恵の十字架の下にいる私たちの姿も見つめていらっしゃ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イエスは私たちを監視者として見るのではなく、イエスの愛に感激して感謝して神に似た心と信じる信頼で生きていく、まるで愛らしい自分の子供たちの成長を喜んで眺める両親の心情で眺め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