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2008.11.12.수요예배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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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1-13 |
9066 |
99 |
2008.11.09.주일오전예배(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하는가?#3 마(マタイ福音書)26:36-4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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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1-09 |
9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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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9주일찬양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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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1-09 |
9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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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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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1-05 |
8399 |
96 |
2008.11.3.주일 찬양 예배(설교:박규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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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1-03 |
9068 |
95 |
2008.11.2.주일 2부 예배(믿음의 네기둥 설교:박규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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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1-03 |
8934 |
94 |
2008.11.2.주일 1부예배(정상의 꿈을 갖자 설교:박규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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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1-03 |
8863 |
93 |
2008.10.29 수요예배(요한복음講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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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30 |
8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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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6.주일오전예배(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하는가? 마26:36-4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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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26 |
8979 |
91 |
2008.10.22 수요예배(요한복음講解)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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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23 |
8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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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9 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하는가? 마(マタイ福音書)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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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19 |
7654 |
89 |
2008.10.19.주일찬양예배(솔로몬의 잠언 잠언(箴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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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19 |
7538 |
88 |
2008.10.15 수요예배(요한복음講解)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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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15 |
8207 |
87 |
2008.1012.주일오전예배 마(マタイ福音書)26:31-35 주의 말씀을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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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12 |
7947 |
86 |
2008.10.12.주일찬양예배(솔로몬의 잠언 잠언(箴言)2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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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12 |
8845 |
85 |
2008.10.8 수요예배(요한복음講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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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08 |
7870 |
84 |
2008.10.5 언약의 피를 기억하는가? 契約の血を覚えていますか?마(マタイ福音書)26:26-3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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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05 |
9302 |
83 |
2008.10.5 주일찬양예배(솔로몬의 잠언 잠언(箴言)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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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05 |
8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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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수요예배(요한복음講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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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집사 |
2008-10-01 |
9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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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9.28.주일오전예배(보이지 않는 숨겨진 사랑隠れて見えない愛마マタイ福音書26: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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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목사 |
2008-09-28 |
8461 |
본문 : 마태복음 26장 36-46절
제목 : 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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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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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기도는 우리가 지난 주에 이어서 계속 살펴보고 있는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던 모습을 살필 때에, 우리만이 세상 것들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자신이 당면한 현실 앞에 고민하신, 슬퍼하신, 그리고 마음이 죽을 정도로 아파하셨던 그 모습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의 인생을 통하여 해결하신 그 문제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모습대로 뒤따라간다면 우리는 충분히 예수님의 승리의 삶을 좇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것들이 예수님께서 먼저 당하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 인생의 표본 되시는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1. 아버지의 원대로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39절 하: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곧 자신의 소원을 뒤로 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숙한 신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입니다. 철 든 아이와 아직 철 들지 않은 아이의 차이점은 그 아이의 고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삶은 철부지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삶에서는 기도하는 것도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추어서 달라고 하는 모습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철 든 아이들은 자신의 뜻을 부모 앞에서 접을 줄 압니다. 주님도 당신의 원이 아닌 하나님의 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구하셨습니다. 모든 기도의 내용을 “달라”라는 내용으로 일변하는 모습의 사람들은 거머리의 두 딸처럼 “다고 다고” 하지만 아무리 채워도 그것에 대한 만족 또한 없습니다 (잠 30장 15절: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나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던 것은 성숙한 기도의 모습이었습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어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서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내 삶 가운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지, 내가 내 기도를 통해서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려 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도를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오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분명히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제자를 향한 기대치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40절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떠한 기대치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아파하고,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지금 단 한 시 동안이라도 깨어서 나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는 기대치가 제자들을 향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감독이 선수에게 거는 기대치가 있듯이, 부모가 자녀에게 거는 기대치가 있듯이, 스승에게 제자를 향한 기대치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제자가 그 기대치에 부응했을 때에 스승은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님은 고물 가운데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광풍이 일어나고 물이 넘쳐 배가 잠기게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주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며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님이 일어나셔서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자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 제자들에게 정말 믿음이 없었습니까? 제자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게 된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깨웠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깨울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믿음이 없는 자라고 부르시며 책망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는 제자들을 향한 믿음의 기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깨우지 않아도, 주님과 함께 있다 한다면 내가 아무런 걱정이 없고 나를 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한 단계 더 높은 믿음을 원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향해서도 당신의 기대치를 가지고 계십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기대치가 발견되었습니까?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계신지에 대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그것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한 시 동안만이라도 주님과 함께 깨어있기를 원하셨고 그것이 그들을 향한 기대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죽게 된 심정을 아버지 앞에 중보해주기를 원했던 그 기대치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기대치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안에서 주님의 기대치가 무엇인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고 지금도 그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셔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시는 주님의 뒷모습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지 아니한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3.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41절 상: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우리의 신앙의 삶은 언제든지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깨어있지 아니하면 안될 상황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기이며 나의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날 밤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깨어서 기도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모두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곧, 우리의 삶 가운데 실패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로서, 삶 가운데 혹시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잘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시 한번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 봐야 할 시기입니다. 왜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삶의 모든 것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데 대한 확증을 기도를 통하여서 인정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 하는 것은 나를 형통하게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는 나를 넘어뜨리는 올무, 나를 넘어지게 하는것,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자신의 신복들과 수많은 전략을 세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매번 이 전략들에 적절한 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람왕이 생각하기를, ‘우리 가운데 분명히 첩자가 있다’ 하니, 그의 대신들이, ‘왕이시여, 왕이 침실에서 나눈 말씀이라도 이스라엘의 엘리사가 다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엘리사가 있는 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아람왕은 군사를 보내어 엘리사를 잡으려고 했고, 이 군대의 모습을 본 엘리사의 사환이 걱정 가운데서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고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열왕기하 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왕의 군대보다 더 많은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 이것을 발견했던 것입니까?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는 걱정이고 근심이었던 것이,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내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내가 들었던 시험에서조차도 바로 일어날 수 있는 이유가 기도였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리에서 일어나려면, 시험에 자리에서 벗어나려면, 깨어서 근신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가 깨어서 기도해야 할 명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4. 마음과 육신의 거리감을 깨닫게 했습니다. (41절 하: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우리 육체의 강건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인식해야 합니다. 육체의 피로가 마음을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마음이 움직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몸입니다. 몸이 천근만근이면 생각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기도하기 원했으나, 지친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한 순간도 깨어있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강건함을 잘 지켜야 합니다. 특히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영적인 생활에서 육체의 관리는 절대적이고 생명과도 같습니다. 기도도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의 한계를 잘 알아서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의 삶에서 실패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건강관리 잘 하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모습으로 여러분의 모든 생을 주 앞에 투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아버지께 순종하는 기도였습니다. (42절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모습은 아버지 앞에 순종의 모습을 표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성령충만으로만 가능합니다. 내 생각이 포기되고, 자아가 부정되고, 내 이성에서 내가 벗어났을 때에 그 때 비로소 순종이라 하는 것이 내 안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은, 기도의 꽃은 응답일 수 있으나, 기도의 열매는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결과가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모든 기도는 자기 체면이며 자기심취입니다. 순종으로 이어질 때에 그 기도의 응답이 제대로 나온 것입니다.
다음 주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아버지께 순종하는 기도였다는 측면에 대해 좀 더 깊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내 삶이 얼마나 순종되고 있는가, 아버지의 말씀에 대하여 내 삶이 얼마나 순종되어지고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 앞에 내 삶이 얼마나 움직여지고 있는가, 내가 기도한 것이 응답으로 내 삶에 나타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겟세마네 기도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주님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를 받으시옵소서’ 라는 순종의 제사가 아버지 앞에 상달될 가장 거룩한 제물이 될 줄로 믿습니다.
녹취:오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