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글:김용수(写真 ·文:金ヨンス)
동경연합장로교회의 교회연합12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동경할렐루야교회의 34주년과 동경한인장로교회의 27주년을 맞는 해가 되기도 한다.
12년 전 두 교회는 한 교회로 연합하여 동경연합장로교회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른다. 두 교회의 연합의 계기는 2011년 동북대지진으로 많은 교우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었다.
특별히 이 일이 두 교회의 어려움으로 오게 되었던 것은 두 교회 모두 자신들의 건물을 갖고 있는 교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두 교회가 동경에서 월세로 수십 년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지만 얼마나 큰 아픔을 수반해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 느낌은 끔찍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나름 자신들의 교회건물을 갖고자 기도하며 힘을 모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사기를 당하여 예배당 없이 1년을 떠돌며 공원에서 예배해야 했던 일도 겪어야했다.
코로나로 교회의 월세마저 힘들어 구주구리 수양관으로 옮겨 예배한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이곳에도 교회가 세워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믿음이 들기까지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동경으로 올라가는 일을 늘 생각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년 반전에 일본인교회인 긴시초그리스도교회를 동경으로 분리 개척을 시키고 난 후에도 그렇게 생각하였고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이곳에 공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생명들을 부르시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 확신이 들기까지는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지체들의 헌신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매주 1시간 반을 차로 이동하여 동경에서부터 더 멀리는 하치오지에서 치바 구주구리로 내려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4년간 지속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옛말에 긴병에 효자 없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많은 분들이 떠났지만 그래도 그 병든 부모를 사랑하고 살피면서 끝까지 견디고 있는 몇몇 효자 효녀들이 있다.
이제 이들을 위해서라도 긴 아픔에서 일어나야한다. 이들이 원하고 있는 건강하고 힘 있는 교회를 세워야한다. 비록 태산을 삽으로 옮겨야 하는 일같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힘든 일이지만 다시 한 삽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今年、東京連合長老教会が教会合同12周年を迎えると同時に、東京ハレルヤ教会は創立34周年、東京韓人長老教会は創立27周年という節目の年でもあります。
12年前、二つの教会は一つとなり、「東京連合長老教会」として新たな歩みを始めました。その契機となったのは、2011年の東日本大震災でした。震災の影響で多くの教会員が韓国へ帰国せざるを得なくなり、両教会ともに大きな困難に直面することとなったのです。
特に、両教会がそれぞれ独自の礼拝堂を持たず、長年東京で賃貸によって礼拝を守り続けていたことが、苦しみをより一層深めました。それ自体が奇跡とも言える忍耐でしたが、思い返せば、その痛みと重圧は言葉では言い表せないほどでした。
そのような中、私たちは自らの教会堂を持つことを願い、祈りを合わせ、力を集めました。しかし、その過程で不動産業者に詐欺に遭い、1年間、礼拝堂のない生活を余儀なくされ、公園で礼拝を捧げるという経験もしました。
その後、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影響で家賃の支払いも困難になり、千葉県の九十九里修養館へと拠点を移してから、早くも4年が経ちました。この場所にも神様の御心があると、私たちは信じるようになりました。というのも、私たちはこれまで、常に「再び東京へ戻ること」を考え続けていたからです。
1年半前には、日本人教会である「錦糸町キリスト教会」を東京にて分離・開拓しました。その後もずっと「東京へ戻る」ことが当然のように思えていました。けれども、数か月前からこの地で工事を始める中で、ここにこそ神の聖所を築き、神が救いへと導こうとされている命を、この地で呼び集めておられるという確信が生まれたのです。
その確信に至るまでには、変わらぬ信仰と献身で共にいてくれた兄弟姉妹の存在がありました。彼らは毎週1時間半もの時間をかけ、東京、あるいは更に遠く八王子から千葉・九十九里まで通ってきてくれました。決して容易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この働きを4年間続けてきたということは、なおさら容易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
「長患いに孝行息子なし」ということわざがありますが、本当にその通りだと思います。多くの方が去って行かれましたが、それでも病める親を愛し、気遣い、最後まで寄り添っている数人の孝行息子・娘たちがいます。
だからこそ、彼らのためにも、この長い苦しみから立ち上が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彼らが心から願っている、健やかで力強い教会を築いていくべきです。
たとえ、それがまるで大きな山を一つ一つスコップで移すような、終わりの見えない大変な作業のように思えても、もう一度、その一掘りから始めるしかないのです。
